[20020826-29] 자전거 국토종단 제 4부

 

 

자전거 국토종단 제 4부

 

Into the Island

 

 

l       2002년 8월 26일 (완도 ~ 제주 항 ~ 중문)

 

 오늘은 분명 6시 30분에 일어나야 한다. 제주도로 떠나는 배가 8시에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자려고 했던 수면실을 취한 다른 팀 녀석들의 천둥 코골기 비기에 휘말리지 않았던 난 숙면을 취할 수 있었다. 자전거 여행을 하며 내공을 쌓았더니 이제 왠만한 곳에서도 잠은 잘 잘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이번에는 코도 막히지 않고 아주 잘 잤다. 상욱이의 핸폰 진동으로 깬 나와 상욱이는 먼저 샤워를 하고 명섭이를 깨웠다. 명섭이도 오늘 일찍 일어나야하는 것을 아는지 벌떡 일어난다. 우리는 금방 떠날 준비를 마친다. 찜질방 아줌마한테 제대로 인사도 못하고 금방 완도항을 향해 떠난다. 근처 마트에서 연양갱과 오예스랑 음료수를 준비한 우리는 8시 발 배 표를 끊는데 무난히 성공한다.

 

 배에 올라탄 우리는 짐삯 4000(1000원 깍아서..)원 씩 내고 바깥의 좌석에 자리를 잡는다. 출발은 8시. 배가 ‘뿌우우우~’ 소리를 내자 드디어 제주도를 향하는구나.. 라는 느낌이 팍팍 오른다. 배가 출발하자마자 우리는 사온 간식들을 마구마구 뜯어먹었다. 원래 오후 3시 발 배는 3시간 30분 걸려서 제주도에 도착하는데 우리가 탄 배는 추자도를 거쳐서 제주도에 가는 것이므로 5시간이 걸렸다. 아무리 우리가 무한체력이라지만 잠들지 않고 5시간씩이나 배에 짱박혀 있을 수는 없는 법. 명섭이는 어디서든 잘 자므로 매연이 콸콸 쏟아지는 바깥자리에서도 잘 잤지만 상욱이랑 나는 2등석 자리 빈 곳에서 달콤한 잠을 청한다. 한 시간쯤 자고 우리는 셋이 모여서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수다를 실컷 떤다. 지루하게 갔다 싶으면 추자도에 도착했고 지겹다 싶어서 한 숨을 청하면 아직도 푸른 바다 위를 달리고 있었다. 이제 우리가 보내야 할 시간을 거의 다 보냈을 무렵 배의 앞머리에서 제주도 땅덩어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가 탄 배는 제주항에 1시경에 도착했다. 오늘의 잠자리는 아마 중문관광단지에 있는 어떤 콘도로 정해질 것 같았다. 그런데 제주에서 중문이라면 짧은 거리가 아니었다. 게다가 우리 출발시간이 오후인지라 만만한 도전이 아닐 수 없었다. 일단은 제주시를 빠져나가는 것이 첫 째 과제. 제주시를 빠져나가는 길목에서 제주산 한라우유 하나 먹어주고 열심히 달렸다. 그런데 며 칠 전부터 햇볓이 심하게 내리쬐었던 지라 오후 주행은 굉장히 힘들고 괴로웠다. 그래서 우리는 중간에 나오는 해수욕장에서 해수욕이나 하면서 좀 쉬기로 하였다. 어차피 해수욕장은 해변가에 있는지라 국도를 타기보다는 해변도로를 타기로 결정하였다. 이것은 어쩌면 사소한 실수였을 지도 모른다.

 

 해변도로는 꽤나 힘든 코스였다. 길이 쭉쭉 뻗은 것이 아니라 꼬불꼬불 오르내리막이 장난이 아니었던 것이다. 게다가 더 참기 힘든 것은 맏바람이었다. 고생끝에 어떤 여자 두 명의 하이킹 족을 제껴버리고 곽지해수욕장에 도착한다. 곽지해수욕장.. 바로 옆에 있던 협제해수욕장보다는 많이 알려진 편은 아니지만 우리가 쉬면서 해수욕하기에는 아주 적당한 곳이었다. 자전거는 대충대충 묶었다. 어차피 이제 제주도에 도착했으니 도둑들아! 가져갈테면 가져가라~ 라는 심산이었다. 우리는 대충 속 옷을 벗고 바지만 입은 체로 바다 속으로 뛰어 들었다. 곽지 해수욕장이 좋은 점이 어떤 곳은 마치 물이 얕으면서 정말 깨끗했고 수영장처럼 현무암으로 쫘악 둘러싸여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중간중간에 잘 살펴보면 모래가 버섯처럼 솓아 있는 곳이 있는데 그 곳이 한국지리 시간에만 배웠던 용천대! 였던 것이다. 그 곳에서 솟아나는 물은 정말 얼음장처럼 차가웠는데 거기다 발을 대 놓고 있으면 밑도 끝도 없이 발이 빠져들어갔다.

 

 하지만 우리는 좀 더 깊은 곳을 원했으므로 사람이 별로 없던 옆 자리로 가서 시원하게 해수욕을 했다. 우리 앞 쪽 좀 얕은 곳에서 이쁜 여자 하나를 끼고 온 패밀리가 있어서 부러운 눈길로 쳐다보기는 했으나 개의치 않고 열심히 더위를 피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맑고 차가운 바닷물은 오후 햇살을 피하는데 최고로 좋은 휴식처를 제공하였다. 우리는 한 시간 정도 곽지해수욕장에서 즐거운 해수욕을 즐긴다. 해수욕장에서 야영은 많이 했어도 해수욕을 제대로 즐긴 것은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된다. 신나게 더위를 식힌 우리는 수돗가에서 소금기에 젖은 몸뚱이를 씻어내고 사람들이 없는 편을 향해 서서 바지를 펄럭이며 몸을 말린다. 모양새는 상당히 추했지만 우리는 서로의 모습을 보며 웃어대며 열심히 XXXX부분을 잘 말렸다. 그 다음 다시 주행모드로 변신. 우리가 가야 할 중문단지를 향해 열심히 달리기 시작한다.

 

 한림쯤 가는데 자전거 팀 하나를 또 제친다. 여기서부터 루트에 대한 상당한 고민이 시작된다. 한 쪽 길은 평지에 엄청난 맞바람. 다른 쪽 길은 한라산 자락을 넘어 가는 것. 이렇게 비교가 상당히 힘든 고민을 놓고 우리는 엄청난 갈등을 하게 된다. 하지만 달려본 결과 해변도로가 쉬운 것도 아니고 끊임없이 부는 맞바람은 참을 수 없이 허벅지를 단단하게 만든다는 사실에 주목. 시간도 줄일 겸 한라산 루트를 통해 중문으로 가기로 결정한다. 과연 잘 한 결정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결과로 봐서는 성공임에 틀림없다. 한라산을 통해 중문으로 가는 것은 엄청난 고난이었음은 확실하다. 왜냐하면 그렇게 많은 하이킹족을 우리 쪽 루트에서는 단 한 팀도 발견을 못했기 때문이다. 적어도 이 사실 하나 만으로도 우리는 굉장한 일을 해냈음은 분명하다. 우리 팀은 끊임없이 나오는 오르막에 욕을 나불나불 거리면서 제주도를 점점 갈라나가기 시작한다. 어떤 가게에 들러서 물어봤더니 3km짜리 언덕도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정말 다리가 휘청했었다. 말만 듣고도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누구인가. 그간 반도에서 엄청난 훈련을 쌓아온 팀이 아닌가. 우리의 엄청난 페달질은 곧 자전거를 한라산 중턱 위에 올려놓는데 성공한다. 그 이후 나온 7km짜리 연속 내리막은 입이 귓가까지 벌어질 정도로 우리를 행복하게 웃도록 만들어준다. 말이 7km이지 사실 자전거를 타고 달리려면 끔찍한 거리다. 하지만 시원시원 뻗은 내리막은 7km라는 거리를 단지 5분 만에 우리를 중문관광단지 앞까지 인도하였다. 거기서부터 한국콘도를 물어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오늘 열심히 콘도까지 달린 이유는 단 한가지였다. 그것은 바로 회! 회가 바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명섭이네 아버지께서 부쳐주신 돈으로 오늘은 진수성찬의 저녁을 기대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킹마트인지에 도착해서 참돔이랑 광어를 1kg씩 사고 오겹살을 1kg샀다. 그리고 아침에 먹을 먹거리 조금이랑 술 몇 병을 사들고 한국콘도를 찾아갔다. 한국콘도 내에서 숙소를 잡는데 사소한 어려움이 있었지만 우리는 더 좋은 빌라를 얻어 그 쪽으로 향하게 된다. 우리가 도착한 빌라는 34평형으로 지친 몸을 편하게 쉬기에는 넓고도 넓은 대지였던 것이다.

우리는 취한 상욱이가 쏜 시바스리갈까지 먹어가며 맛난 안주와 화려한 술메뉴로 제주에서의 첫 밤을 장식한다. 솔직히 나는 국토종단에 대한 보상으로 좀 즐기며 놀 수 있는 관광 및 여행을 기대하였으나 오후의 산타기 질주에 굉장히 고달펐었다. 하지만 밤에 벌어진 우리의 광란 잔치는 기대했던 대로 우리를 뜨끈한 후라이팬에 얹은 치즈처럼 단 번에 녹여버렸다. 10박 여행 내내의 가장 행복하고 가장 사치스러웠던 밤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사치스러운 밤은 차라리 없었던게 이후 이틀을 심리적으로 편하게 만들었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니..

 

 

l       2002년 8월 27일 (중문 ~ 중문 해수욕장)

 

 어제 밤늦게 술 마시고 놀았던 지라 아침에도 약간 술기운이 남아있었다. 오늘의 일정은 바다낚시 하나 밖에 없었다. 오늘은 하루 종일 낚시나 하면서 놀기로 했던 것이다. 우리는 제주도에 도착하기 전부터 낚시이야기를 많이 했었다. 어제는 회를 먹으면서 아.. 내일도 회를 또 먹어야 하는가.. 하면서 우스개 소리도 했었다. 얼마나 많은 고기를 잡을 수 있을까.. 어쨌든 이 방은 얼른 비워야 했으므로 다들 따뜻한 물로 샤워도 하고 방 정리를 좀 한 뒤 가방을 다 쌌다. 어제 제주도 동 쪽에는 비가 왔었다는데 오늘도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어서 비옷은 가방 안에 넣지는 않았다. 다 챙기고 나와서 경비실 같은 곳에 가방을 맡겨두고 자전거 짐받이에는 코펠과 버너만 달랑 매단 채 낚싯대 대여점을 찾아 나선다.

 

낚시가게는 우리가 머물었던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아저씨한테 간단한 설명만 조금 듣고 한 길다란 낚싯대를 한 손에 들고 한 손으로는 핸들을 잡고 자전거를 조심조심 몰았다. 방파제 위에서 낚시를 하는 것인데 너무 흥분되고 기대되었다. 특히 나는 낚시를 하고 싶었지만 그 동안 낚시라는 것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이 너무 긴장되고 흥분되었던 것이다. 방파제에 도착하기 전에 가게에 들러서 빅파이랑 음료수 한 통 이랑 과자 몇 개를 준비했다. 그리고 빨간 등대가 우두커니 서있는 방파제에 도착하였다. 자전거는 대충 세워놓고 각자 낚싯대를 셋팅하기 시작했다. 낚싯대를 길게 늘어뜨리고 줄을 일 자로 만든 다음 꿈틀거리는 징그러운 갯지렁이를 바늘에 꾸역꾸역 밀어넣었다. 이 순간은 참 역겨운 순간이다.

 꽤나 파도가 높게 일었지만 하늘은 맑았고 태양이 몹시도 뜨거웠다. 추울까봐 준비했던 긴 팔 옷과 비 올까봐 준비했던 비옷은 그저 짐 만 되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 기대되고 흥분되었던 지라 더운 날씨에 투덜거리면서도 면장갑을 끼고 갯지렁이를 힘들게 바늘에 밀어넣었다. 나는 바다낚시가 처음이라 낚싯줄을 멀리 던지는 방법을 몰라 애를 좀 먹었지만 금새 배우게 된다.  그런데 이상하게 내 낚싯대만 줄이 자꾸 엉키고 나중에는 릴 속까지 줄이 엉켜버려서 혼자 나는 북북 거리면서 성질을 낸다. 또 너무 덥고 그래서 짜증만 나서 나는 이내 지쳐버렸다. 하지만 명섭이랑 상욱이는 고기들의 입질이 재미있기는 한지 열심히 낚싯줄을 늘어뜨리고

 

마냥 파도치는 바닷속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한 시간쯤 입질을 느끼던 순간 상욱이가 첫 물고기를 낚았다. 너무 놀라고 신기했다. 우리가 기대했던 큰 물고기가 아니라서 좀 실망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낚시바늘에 걸려서 퍼덕거리는 물고기를 보며 너무 즐거워했다. 고기들이 얍삽하게 바늘은 안 물고 미끼만 살짝살짝 뜯어먹다가도 이렇게 멍청한 아해들은 바늘을 덥썩 물어버리는 것이었다. 우리는 희망을 갖기 시작했다. 낚싯줄에 엉켜버린 내 낚싯대는 뒤에 팽개쳐두고 우리는 두 개의 낚싯대만을 운영하며 고기낚기에 힘썼다. 나도 상욱이의 낚싯대를 이용하여 능숙하게 갯지렁이도 끼우고 멀리다가 낚싯줄을 던질 줄도 알아가는 순간..

 

 나는 낚싯대의 손잡이 부분이 자꾸 툭툭 당겨지는 것을 느꼈다. 심상치않다 싶어서 릴을 재빨리 돌리는 순간 수면에는 은색으로 번쩍거리는 물고기가 잡혀 올라온 것이다. 상욱이랑 같은 종류의 물고기였다. 나의 첫 어획이었던 것이다. 너무 즐거웠다. 한 마리 잡는데 거의 한 시간씩 걸리는 지라 지칠 때쯤 되니 한 마리씩 올라오느라 포기를 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명섭이는 바다낚시 유경험자였으므로 한 마리도 낚지 못한데 대해 쪽팔림을 느끼고 있어서 명섭이는 더욱더 열심히 낚싯대를 붙잡고 있었다. 사실 우리의 뒷 편에는 낚시하기 굉장히 좋은 장소가 있었지만 거기는 베테랑들이 아까부터 자리를 고수하고 안나왔던지라 우리는 계속 힘들게 방파제 위에서 낚시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상욱이도 곧 탈진. 아까부터 낚싯대를 붙들지 않는 상욱이는 지친 나머지 건물 구석의 그늘에 누워서 자기도 하고 절벽의 그늘에서 자기도 하였다. 명섭이랑 나도 지쳐버리고 말았다. 아까 내가 물고기를 한 마리 낚은 것 말고는 한 마리도 잡히지 않았기 때문에 더 힘들었다. 결국 우리는 머리 위에서 불길을 뿜어대는 태양을 피해 절벽 쪽 그늘로 피해간다. 일기예보에서는 비가 온다고 하더니만 제주도의 하늘은 정 반대로 맑고도 맑음을 자랑했다. 한 시간 정도 쉬었다가 나랑 명섭이는 낚시를 계속했다. 아까 좋은 자리에서 낚시 하던 베테랑 아저씨들에게 떡밥도 좀 얻어서 해보기는 했으나 나는 이미 의욕을 상실한 상태였다. 하지만 명섭이는 다른 포인트에서 열심히 낚시질을 한 결과 우리와는 다른 종류의 물고기를 한 마리 낚았다. 명섭이는 물고기가 바늘을 무는 것을 기다리지 않고 물고기 때가 바늘 쪽에 있을 때 낚싯대를 확 당겨서 바늘이 물고기에 걸리게 했던 것이다. 불쌍한 물고기는 무식한 명섭이의 낚시질에 의하여 머리를 관통 당하고 곧 숨진다. 하지만 우리의 명섭이는 천진한 표정으로 매우 즐거워한다.

 

 결국 4시간 동안 우리 셋이 잡은 물고기의 양. 세 마리. 한 마리도 먹지 못하고 그냥 놔주게 된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상욱이랑 내가 잡은 물고기는 ‘학꽁치’ 라는 놈으로 회를 떠먹으면 굉장히 맛있는 놈이라고 한다. 어쨌든 우리의 첫 바다낚시는 힘들고 괴롭기만 하였고 별다른 소득 없이 끝나고 만다. 낚싯대를 다시 돌려주고 우리는 맡겨두었던 짐을 찾았다. 오후 내내 군것질만 했던 우리는 너무 배가 고팠고 또 시원한 게 먹고 싶었다. 그래서 중국집에서 콩국수 한 그릇씩 먹고 잡채밥을 하나 시켜먹었다. 시원하게 콩국수를 먹고 나니 더위를 먹었던게 좀 가시는 것 같았다. 오늘의 야영지를 또 찾아야 되는데 오늘 너무 피곤했던 지라 근처에 있는 중문 해수욕장에서 야영을 하기로 한다. 중문 해수욕장을 찾아가는데도 고생을 좀 한다. 많이 어두워져서야 중문 해수욕장을 발견했는데 텐트를 거의 다 쳤을 무렵 방송에서 모래사장에서는 야영이 불가능하다고 말을 한다. 우리는 괴로워하며 그냥 우리가 펼치다 만 텐트 위에 털썩 누워버리고 만다. 여기서 좀 쉬다가 위에 주차장 옆에 있는 야영지에 올라가자고 하고 음료수 하나 씩 마시면서 오늘의 피로를 풀어 보려 한다. 여기서 제주일주 중인 모터보드 팀도 같이 만나서 이야기를 좀 한다. 그 팀은 광주에서 출발했는데 이러한 자전거나 모터보드 같은 레포츠에는 아주 빠삭한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그 사람들이 쏘는 맥주 두 캔씩을 마시며 그런 전문적인 지식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좀 듣는다. 나는 솔직히 남자들 팀이라 별로 같이 놀고 싶은 생각은 없었지만 그래도 대화의 화제에 관심이 많아서 여러 가지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나중에 야영지에 올라가서는 자전거 기술도 몇 가지 배우게 된다. 자전거 묘기를 몇 개 배운 것 말고는 그리 즐거운 시간은 아니었다. 너무 피곤해서 그랬던 것일까..

 

 우리는 야영지에 텐트를 치고 잘 준비를 한다. 내일은 또 다시 자전거를 달려서 성산까지 가야 한다. 내일과 내일 모레만 열심히 달리면 이제 우리의 자전거 여행도 매듭을 짓게 된다. 바다낚시의 날. 아쉬움만으로 끝을 맺은 채 제주도에서의 두 번째 밤을 맞이한다.

 

 

l       2002년 8월 28일 (중문 해수욕장 ~ 신양 해수욕장)

 

 아침부터 소나기가 쏟아졌다. 주행 중에 비가 오는 것은 별 상관이 안 되는데 시작하기 전에 비가 오면 준비에도 많은 차질이 생기고 굉장히 피곤한 일이다. 덕분에 출발시간이 좀 늦어졌다. 사실 오늘 달려야 할 거리는 별로 안되지만 일찍 출발하려고 했던 이유는 남쪽나라 제주도의 뜨거운 태양을 피하려고 했었던 것이다. 하지만 소나기가 우리의 의도를 저지하고 말았다. 소나기가 그치고 나타난 태양은 무시무시했다. 아침부터의 더위는 숨을 턱까지 차오르게 만들었다. 뜨거운 태양은 젖은 옷 말리는 데는 일품이었지만 썩 고맙지는 않았다. 어제 만난 모터보드 팀이랑 부산에서 온 중학생 팀이랑 오늘 행동을 같이 하게 되었는데 그냥 중간지점이나 목적지만 같이 하였을 뿐 달리기는 각자 하기로 하였다. 출발은 우리가 제일 빨랐다. 중간에 있던 매점에서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튀김우동(컵라면)과 김밥 두 줄로 아침을 때웠다. 그리고 얼린 물 두 통을 준비한 채 오전 주행을 시작한다. 예상대로 굉장히 더웠다. 하지만 심한 경사는 없었던 지라 별 무리없이 달렸다. 그리고 달릴 때는 오히려 바람이 시원하게 불기 때문에 흘린 땀이 증발하면서 시원함을 가져다 주었다. 그렇기에 땡볕에서 쉬는 것보다는 달리는 편이 더 좋았다. 우리는 천지연 폭포에 가서 낮 시간을 피하기로 결정하고 제주도의 남쪽 도로를 따라 달리기 시작한다.

 지나가던 길에 있던 서귀포 월드컵 경기장에서 사진도 좀 찍고 쉬면서 관광 온 여자들을 구경한다. 거기 있던 사람들 중 우리를 보고 어디서부터 왔냐고 묻는다. 대부분 제주에서 자전거 족을 만나면 ‘몇일 되셨어요’라고 묻는데 우리한테는 ‘어디서부터 오셨어요’라고 묻는다. 우리의 꼴이 말이 아니기는 한가 보다. 그늘에서 좀 앉아서 쉬는 데 꽤 멋진 두 명의 여자를 발견하고는 서로 좋아하는 모습이란 참 지금 생각해보면 얼마나 궁상맞았는지 모르겠다. 말 걸 것도 아니고 사진 같이 찍자고 할 것도 아니면서 말이다. 어쨌든 우리의 서귀포 경기장에서의 휴식은 나름대로 영양가 있었던 휴식이었다. 다시 엉덩이를 털고 일어난 우리는 천지연 폭포를 향해 힘차게 페달을 밟았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천지연 폭포에 도달하였다. 그저께 산넘기 주행을 통해 많이 단련이 된 것일까. 정말 별 탈 없이 천지연 폭포에 도달하였다. 폭포로 내려가기 전에 있던 편의점에서 찬바람 맞으면서 또 컵라면으로 점심을 때웠다. 다 먹고 초코바 하나 씩 사먹고 천천히 에어컨 바람이나 맞으면서 푹 쉰다. 그리고 천지연 폭포를 향해 다시 자전거를 붙잡았다. 도착하고 보니 입장료를 받길래 우리는 일단 자전거를 묶어두고 잠시 쉬었다. 얼마 후에 모터보드 팀이랑 중등부 팀이 도착했다. 자연경치 구경하는데 돈 받는 다는 사실에 모두들 분개하였다. 우리 세 팀은 등나무 그늘에 앉아서 이미 폭포에서 떨어진 물들이 흘러가는 것만 하염없이 구경하였다. 우리를 제외한 두 팀은 한 30분 정도 쉬었다가 바로 출발한다고 하였다. 하지만 우리는 땡볕주행은 사절이었기 때문에 여기 벤치에서 한 숨 자고 출발하기로 하였다. 나는 좀 예민한 편이라 잠도 아무데서나 잘 못자는 편인데 이제는 아무 곳에서나 장소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잘 자게 되었다.

 

 한 3시쯤 되니 햇볕이 우리 벤치 쪽으로 슬그머니 기어들어왔다. 그늘이 밀려나버렸던 것이다. 뜨거워서 도저히 잘 수가 없어 하는 수 없이 출발을 감행하게 된다. 한 네 다섯시쯤 출발했으면 좋으련만 어쩔 수 가 없었다. 우리는 해변도로를 따라 우리의 목적지인 성산을 향해 달렸다. 해변도로라고는 하지만 해변가를 따라 나 있는 길은 아니었고 괜히 오르막만 심하게 나있었다. 오후 주행인지라 우리는 괴로워하며 앞으로 나갔다. 먼저 해변도로를 따라가다가 12번 국도를 타기로 하였다. 어차피 우리가 제주도에서 자전거를 탄다는 것은 관광이 목적이 아니라 한 바퀴 돌기가 목적이었으므로 재빨리 도는 방법을 취하려고 한 것이다. 우리는 주행하면서 오르막에서조차 하이킹 족을 제쳐버리는 괴력을 보이기도 한다. 이제는 거의 허벅지의 근력이 신의 경지에 도달해가는 것 같다. 자전거 일주를 하는 내내 우리는 단 한 번의 추월도 당해본 적이 없었다. 아.. 첫 날 혼자 싸이클 타는 놈한테 추월당하기는 했는데 갸는 짐도 없었고 기자재가 우리 것 보다 월등했으니 그 녀석은 제외다. 아무튼 우리의 오르막에서의 질주는 평지에서의 질주와 맞먹을 수준에 이르렀다. 하지만 여전히 땡볕주행은 너무 괴로운 일이었다. 우리는 열심히 달리면서 아이스크림이나 하나 사먹을 가게를 찾았다. 가게가 있을 만한 동네를 찾아내기는 했는데 12번 국도를 벗어나야 했기에 좀 고민을 하다가 당장의 갈증을 해결하기 위해 구멍가게를 찾아 길을 내려간다.

 근처에 있던 중학교가 수업을 마쳤던지 중삐리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이만한 곳이면 가게가 있겠구나 싶었는데 불량식품을 팔 것만 같은 초라한 가게가 하나 나왔다. 우리는 얼씨구나 하며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아이스크림 통 안에는 200원짜리 아이스크림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으니.. 서주 출신 과일맛 아이스크림들이 단돈 200원에 팔리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행복해하며 아이스크림을 세 개씩이나 먹어버리고 말았다. 폴라포도 300원. 과자와 아이스크림들을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먹어버린 우리.. 나는 나중에 배탈이 나서 고통을 겪기도 한다. 그래도 이렇게 아이스크림으로 더위를 피한 우리는 다시 힘찬 질주를 할 수 있게 된다. 아까 우리가 제쳤던 팀이 깔짝 거리면서 앞에 지나가길래 우리는 또 무서운 속도로 그 들을 제쳐버렸다. 너무 아이스크림과 음료수를 많이 먹은 탓일까.. 차가 쌩쌩 달리는 국도 옆에서도 노상방뇨를 과감하게 실행한다. 그렇게 열심히 페달을 밟다보니 어느새 이정표에 나타난 성산은 사라졌고 성산일출봉이라는 관광표지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신양 해수욕장의 간판은 없었다. 가는 길에 저녁이나 때울 겸 해서 전복죽 집을 찾았지만 전복가격 킬로당 15만원. 기겁을 하고는 아구찜이나 먹으러 들어간다.

 

 식당 아줌니는 달콤한 말로 우리에게 아구찜을 먹도록 유도한 후 아구는 몇 조각 안들어있는 콩나물 케이크를 가져오신다. 우리는 엄청난 양을 보고 행복해하였지만 단지 콩나물로만 되어있는 케이크였던지라 크게 실망을 하고 만다. 게다가 그 무시무시한 매운 맛이란 뱃 속을 완전히 뒤집어 놓고 만다. 그래도 식당에서 맵고 든든하게 배불리 먹을 수는 있었다. 단지 든든하게 먹었다는 소리다. 저녁까지 해결하고 나니 어느새 해가 다 져버리고 하늘이 깜깜해지기 시작했다. 의도치 않았던 야간 주행이었다. 그래도 라이트는 켜지 않고 어슴푸레한 불빛 만을 따라 달렸다. 이윽고 오징어잡이 배에서 뿜어내는 강력한 조명으로 야간 주행은 역시나 분위기 있는 것 이었다. 날아다니는 풍뎅이들에 부딫히면서도 역시나 윤도현 밴드의 노래를 열창하며 달린 우리.. 신양해수욕장에 다 가서 맥주를 10병 사고 과자도 조금 샀다. 어제 모터보드 팀이 쐈으니 오늘은 우리가 좀 쏘려고 했던 것이다. 병 쩔렁쩔렁 매달고 신양 해수욕장에 도달한 순간.. 여태 가본 해수욕장 중 최악의 조건이었다. 이미 중등부 팀은 도달해서 텐트를 치고 있었고 모터보드 팀은 저녁을 먹으러 간 모양이었다. 우리는 모래가 약간 절벽 비슷하게 만들어진 곳에 텐트를 치고 몸을 좀 씻었다. 그리고 모터보드 팀과 맥주를 마시며 오늘 있었던 이야기들을 펼쳐놓았다. 톱머리 해수욕장에서 보았던 보름달은 어느새 반 쪽이 닳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밤공기가 차갑게 느껴질 즈음 각자의 텐트로 돌아가 다음 날의 주행에 대비하였다. 이윽고 무섭고 무서운 밤이 찾아오는데…

 

 

l       2002년 8월 29일 (신양 해수욕장 ~ 제주항 ~ 완도항 ~ 서울)

 

 밤새 불던 바람은 매우 거세어져만 갔고 파도소리는 더욱 요란하게만 들렸다. 텐트 안은 후덥지근해서 잘 수가 없었는데 밖에 부는 바람은 쌀쌀하였다. 새벽 두 시경 텐트가 점점 무너져가기 시작했다. 돔 형으로 된 텐트는 거센 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심하게 휘어있었다. 그 때 시각 새벽 2시. 엄청난 바람은 텐트의 절반을 휘어버리게 만들었고 우리는 텐트가 날아가지는 않을 까 커다란 돌들을 가져와서 텐트 가장 자리에 박았다. 하지만 이 것은 처음부터 잘못된 일이었다. 우리가 텐트를 친 장소가 너무 앞 쪽이었던 지라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정면으로 받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조금만 더 자보고 그냥 새벽에 출발하기로 하였다. 하지만 바람은 거세어져만 갔고 더 이상 텐트가 견뎌낼 것 같지 않았다. 우리는 빨리 짐을 꾸렸다. 그리고 굉장히 신속하게 결론을 내렸다. 오늘 제주항에 가서 배를 타자고 말이다. 이것은 정말 신속하고도 올바른 결정이었다.

 

 텐트와 담요, 돗자리, 폴대 등 필요없는 모든 것은 한 꺼번에 똘똘 말았다. 여기서 다 버리고 갈 작정이었다. 그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거센 바람은 텐트를 똘똘 마는 것 조차 어렵게 만들었다. 우리는 셋이서 커다란 쓰레기더미를 들고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면서 쓰레기통을 찾았다. 하지만 이 커다란 더미가 들어갈만한 쓰레기통은 없었다. 결국 우리는 어떤 정화조 같은 곳에 무단투기하기로 결정. 작은 구멍으로 커다란 텐트뭉치들을 꾸겨넣기 시작했다. 물론 걸리면 벌금을 무는 불법행위였다. 하지만 아무도 보는 이는 없었고 우리는 깔깔거리면 ‘이거 왜 안들어가’하고 소리치며 꾸역꾸역 구멍 속으로 우리의 애물단지들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챙겨갈 짐을 다 꾸린 우리. 그리고 지옥과도 같았던 신양 해수욕장을 등 뒤로 한 채 제주항을 향해 전진했다. 우리 여행의 마지막 밤은 이렇게 험난하고도 고달팠다.

 

 우리의 첫 새벽질주였다. 12번 국도에 조차도 차는 거의 없었다. 애써서 짐을 정리하고 신양 해수욕장을 빠져나온 우리는 너무나 배가 고팠다. 그 때 시각이 한 4시 반 이었다. 항구에서는 어로활동을 하고 난 선원들을 위한 식당이 있지 않을 까 하고 성산항으로 가보기로 하였다. 성산항으로 가는 길은 공사중이라는 바리케이트가 몇 개 있었다. 거기는 주의하라고 몇 개의 깜빡이는 라이트가 있었는데 그게 어찌나 멋있게 보였던 지 우리는 이번에는 아까는 쓰레기를 무단투기하더니 이번에는 도둑질까지 하는 것이다. 이번에도 캭캭거리면서 라이트들을 챙긴다. 짐이 무겁다며 양말 한 장까지 다 버리던 우리가 쓸데없는 것이나 챙기며 오히려 짐을 더 무겁게 만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때는 너무 라이트가 멋졌고 그렇게 몰래 챙기는 게 너무 재미있었다.

 근처에서 구멍가게를 찾았는데 1500원씩 이나 하는 비싼 컵라면을 먹으면서 엄청 투덜거렸다. 게다가 컵라면이 굉장히 오래된 것 같았다. 진열되어있던 쌀과자 봉지 속에는 바퀴벌레가 돌아다니고 있었고 밀키스 한 병이 2000원이었다. 하지만 할 수 없이 그런 열악한 환경속에서 아침을 때우고 재빨리 성산항을 빠져나왔다. 하지만 컵라면 탓인지 배탈이 났는지 배가 너무 아팠다. 상욱이도 좀 배가 아팠던 모양인데 난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근처에 있는 민가에 들어가서 화장실을빌렸다. 아줌마가 일을 보고 계셨는데 굉장히 놀라셨다. 하지만 곧 친절하게 화장실을 이용하라고 하셔서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그러고 다시 시원하게(?) 아침 질주를 시작하였다. 동은 이미 다 텄었고 시간이 꽤나 많이 흘렀었다. 우리는 제주항에 8시까지 도착하는 것이 불가능할 것만 같았다. 은근히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는 것 같았지만 실제로 소화해내는 거리는 얼마 안되었던 것이다. 우리는 다들 거의 포기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제주항에 도착하면 배시간이나 알아보고 사우나나 하러 가기로 하였다.

 

 제주항까지 달리는 것은 점점 힘들어졌다. 아침이라 점점 차도 많아졌고 왠지 모르게 제주항에 빨리 가야 한다는 심리적인 압박감 때문이었을 지도 모른다. 또 결정적으로 이것이 우리 자전거 여행의 마지막 질주라고 생각하니 더욱 지쳐버렸을 지도 모른다. 우리는 명섭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클래식을 들으며 마지막까지 힘을 짜내었다. 그 와중에도 명섭이는 클래식을 크게 틀어놓고 자전거를 달리니 마치 서커스 공연 광고하고 다니는 것 같다며 킬킬거리면서 달렸다. 나도 클래식 소리만 들려오면 자꾸 웃겨서 명섭이한테 가까이 갈 수가 없었다. 제주를 10km남겨 놓으니 그 때 시간이 벌써 8시였다. 우리는 이미 배는 놓쳤다고 생각했지만 비가 후둑후둑 떨어지길래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페달을 밟았다. 이윽고 ‘제주시’ 라는 커다란 이정표가 등장했다. 그리고 ‘제주항’ 이라는 새로운 이정표가 등장했다. 이제 우리의 자전거 질주는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제주시에 들어가니 대학교에 가는 학생들도 많았고 교복을 입은 학생들도 많았다. 오히려 제주시에 도착해서는 활기가 넘쳐서 그랬을까 목적지가 가까워져서 그랬을까 페달밟기가 더 수월했다.

 

그 때 언덕을 돌아내려가다보니 저멀리 바다 안 쪽으로 커다란 항구가 보였다! 도착이다. 제주항에 도착했다. 내가 지금 제주항을 시야에 두고 있다는 것은 우리의 제주도 일주가 끝났다는 말이고 제주항에 자전거를 들여놓는 순간 우리의 자전거 여행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긴다는 의미다! 너무 흥분되었다. 그러면서 그동안 내 짐받이에 실려있던 무거운 짐만큼이나 부담스러웠던 온 몸의 피로가 치즈처럼 녹아버렸다. 행복에 겨웠다. 집에 간다는 사실. 우리의 자전거 여행이 멋지게 마지막을 장식한다는 사실. 모든 것이 너무 감동스러웠다. 거의 목이 메일 지경이었다. 내리막을 내려가며 소리쳤다.

 

“ 도착했다아아~!!!!!”

 

 제주항에 도착한 우리는 완도행 배가 9시에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우리는 오늘 안에 서울에 간다는 것은 불가능 한 일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는데 20분 후면 완도로 출발하는 배를 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완도에서 제주도 오기 전의 허탈함과는 정반대의 짜릿함을 느꼈다. 우리는 재빨리 완도행 표를 세 장 끊고 간식거리를 조금 샀다. 그리고 개인정보를 몇 개 적고 제주도를 떠나는.. 우리의 마지막 여행지였던 제주도를 떠나는 배에 올라탔다. 이미 좋은 객실의 자리는 빼앗겨서 우리는 갑판 위에 하나 남은 담요를 깔고 자리를 잡을 수 밖에 없었다. 9시가 되자 배는 힘찬 고동소리를 울렸다. 그리고 배밑의 스크류의 진동을 느끼는 순간 배는 움직이기 시작했고 제주도를 등 뒤로 하게 되었다. 내리 쬐는 태양을 갑판 위에서 통째로 받는 다는 사실이 참기 힘들기는 했지만 이제 집에 가는 길이다. 이제부터는 자전거를 타고 어디론가가 아닌 배에 올라타고 집에 가는 중인 것이다. 그리고 태풍이 몰아치기 전의 위험한 제주도의 하늘을 보며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을 수 십 번도 더했다. 뿌연 구름에 둘러싸인 제주도는 점점 멀어져만 갔다. 그리고 시야에서 제주도가 사라졌을 무렵 우리는 갑판위에서 단 잠을 청할 수가 있었다. 이제 3시간 만 좀 더 참으면 다시 유라시아 대륙(좀 거창하군..)에 발을 올려놓을 수 있다. 한 시간 정도의 깊은 잠에 빠져든다..

 

 하지만 제주도에서 점점 멀어지자 구름이 사라지고 얄미운 태양이 슬그머니 얼굴을 내밀다 싶더니 이제는 보란 듯이 그 뜨거운 햇살을 내리쬐기 시작했다. 더위를 견디다 못한 상욱이랑 나는 좀 시원한 밑에 객실로 내려갔다. 명섭이는 그 뜨거운 태양빛을 받으면서도 광합성을 하는 중인지 죽은 것인지 꿈쩍도 않고 단 잠을 자고 있었다. 자리가 없어서 상욱이랑 나는 괴로워하며 서있었다. 이윽고 잠에서 깬 명섭이가 자리가 빈 객실을 찾았다며 따라오라고 하였다. 여기도 역시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딴따라 잔치가 벌어진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누워있을 자리는 있었다. 마치 이 군단은 우리를 따라다니면서 노래를 하는 것 같았다. 흔들거리는 배에서도 술도 참 잘 드시고 노래도 참 잘하시며 신나게 노시는 가운데 우리는 시원하게 완도까지 갈 수 있었다. 박찬호 선발경기도 보기도 하고 갑판에 내리쬐는 태양빛을 피한다.

 

완도가 보였다. 우리가 힘들게 도착해서 마치 고향처럼 푹 쉴 수 있었던 완도가 보였다. 깨끗한 하늘아래 반짝이는 완도항. 이유없이 포근함을 느낄 수 있었다. 완도항에 도착해서 배는 닻을 내렸고 다들 배에서 빠져나갔을 무렵 우리도 자전거를 배에서 내렸다. 그리고 완도터미널로 가서 서울로 가는 버스표를 확인하였다. 지금 시각은 1시. 서울직행 우등버스 출발 시간은 3시 30분이었다. 시간이 정말 계획이나 한 것처럼 딱딱 맞았다. 우리는 표를 세 장 미리 끊고 시원한 식당에 들어가서 냉면과 갈비탕을 먹었다. 든든하게 점심까지 해결한 우리는 10박 11일 동안의 우리의 ‘발’ 이었던 자전거를 택배를 통해 서울로 보내기로 결정한다. 버스에 실으면 서울에 도착해서도 번거로울 것 같았기 때문이다.

 

택배회사에 자전거를 맡기고 걸어서 터미널까지 가는데 기분이 그렇게 이상할 수가 없었다. 자전거를 탔을 때만 해도 거침없이 이 도로를 질주했었는데 지금은 신호등 하나에 막혀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터미널에 도착한 우리. 이제 마지막으로 우리를 서울까지 데려다 줄 마차를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the end…

 

 

 

by hoyarius | 2006/12/03 18:28 | Before | 트랙백

[20020825] 자전거 국토종단 제 3부

 

 

자전거 국토종단 제 3부

 

Take a Rest!!

 

 

l       2002년 8월 25일 (송호리 해수욕장 ~ 완도)

 

오늘은 제주도를 향해 떠나야 하는 날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침 일찍 땅끝탑 구경도 좀 하고 빠른 시간내에 완도를 향해 가야한다. 완도에서 출발하는 배는 3시 30분. 여기서 약간의 착오가 있어서 나중에 심한 실망감을 가져오기는 하지만 어쨌든 우리는 그리 알고 열심히 달리기로 작정한다. 아침은 어제 남은 고기와 계란으로 때우고 바다에서 좀 놀다가 출발 준비를 마친다. 송호리 해수욕장에서 나와서 땅끝탑에 가는 길은 3km밖에 안되었지만 그 오르막의 경사란 여태 경험해본 것 중 최고였다. 으.. 장난이 아니었다. 다들 내려서 낑낑 거리며 올라갔다. 오르고 또 올라서 겨우 정상에 도착 신나게 내리막을 내려가는 것이다. 자! 이제 내리막이다. 오르막 경사가 심했던 것 만큼이나 내리막의 경사도 엄청 심했다. 게다가 급하게 휘어진 코너가 굉장히 많아서 브레이크를 잡으면서 달려야 했다. 그런데 여기서 큰 부상이 발생한다. 빠르게 내려가기만 하던 명섭이가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S코너를 극복하지 못해 자전거를 깔면서 옆의 도랑에 처박히고 만다. 뒤 따라가던 나랑 상욱이는 넘어져 있는 자전거를 보고 아찔하고 만다. 뒤에 차가 따라붙어 있었기 때문에 굉장히 위험했다. 명섭이에게 가까이 가보았더니 명서비의 왼쪽다리가 심하게 까져있었고 발가락의 살점도 나가있었다. 자전거의 휠은 휘어서 잘 굴러가지도 않았다.

 다행히 뼈를 다치지 않아서 움직이는데 무리는 없었지만 다들 처음부터 지치게 되었다. 얼른 치료부터 하고 땅끝마을로 천천히 내려갔다. 내려가서 경찰서가 보였는데 거기서 경찰아저씨들이 친절하게 붕대도 감아주시고 밴드도 붙여주셨다. 또 빨간약도 듬뿍 바르고 남은 약은 주셨다. 상욱이랑 나는 음료수를 한 통 사놓고 기다렸다. 명섭이가 좀 치료되고 나니 다들 기분이 다시 좋아졌다. 음료수도 마시고 좀 쉬다가 땅끝탑으로 가는 길을 찾아낸다. 산 길이라 조금 힘들기는 했지만 그리 긴 산행은 아니었다. 땅끝탑. 별로 볼 것은 없었다. 어제 밤에 느낀 성취감 보다는 덜 했다. 우리는 탑 구조물 밑으로 내려가서 사진도 좀 찍다가 그냥 얼른 내려왔다. 제주도에 가는 일이 더 급했기 때문이다. 내 자전거의 펑크도 심했고 명섭이의 사고로 인한 자전거 고장도 문제였기 때문에 여기서부터는 무조건 히치하이킹 만으로 완도 항까지 가야 했다. 사실 우리 모두 무리라고 생각하며 일단은 트럭을 잡아가며 조금씩 전진하기로 했다. 아까 내려왔던 내리막을 좀 거슬러가서 삼거리에서 트럭을 좀 잡아봤는데 영 잡히지 않았다. 힘들었다. 날씨도 굉장히 더웠고 햇살도 내리쬐는 것이 참기 힘들었다. 너무 힘들었다. 1시간
동안 힘들게 고생한 끝에 겨우 아줌마 트럭 한 대를 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 트럭도 멀리 가는 차가 아니었으므로 한 5분쯤 달리고 내려야 했다. 다시 트럭을 잡으려고 노력했다. 1시간 30분.. 시간이 갈수록 오늘 제주도에 가는 계획은 점점 물거품이 되어가고 있었다. 우리는 옆에 있던 바다에서 게나 잡으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옆에서 한 아저씨가 트럭을 정비하고 있었다. 명섭이랑 나는 슬금슬금 다가가서 아저씨 어디까지 가세요..하며 태워달라고 부탁했다. 아저씨는 이렇게 말했다. 너희가 나 때리고 차뺏어 도망가면 어떡해라고 말이다. -_-;; 덩치도 좋은 아저씨가 우리한테 그런 말을 하시다니.. 우리는 아쉬워하며 계속 아저씨를 찔러댔다. 조금 있다가 아저씨가 친구랑 얘기 좀 하다가 우리보고 ..

                                   
. 뒤에 짐 실어

 

 어예~!! 이제 또 앞으로 조금 전진할 수 있게 되었다. 아저씨는 심심하다시며 제일 순한 놈 앞에 타라고 하셨다. 상욱이를 앞에다 태우고 명섭이랑 나는 뒤에 탔다. 트럭은 엄청난 속도를 내며 앞으로 나아갔다. 너무 행복했다. 커브에서도 속도를 줄이지 않으시는 아저씨는 무서운 기세로 앞에서 알짱거리는 차들을 모두 추월해버리셨다. 우리는 꽤 많은 거리를 내달았다. 완도대교도 넘은 것 같았다. 명섭이랑 나는 뒤에서 꾸벅꾸벅 졸면서 아저씨가 멈추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가 멈춘 곳은 완도시였다. 알고보니 아저씨는 완도 공설운동장에 축구하러 가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이런 대박 행운이 우리에게 있었다니.. 아저씨는 어제 술을 100만원어치 먹어서 커브에서 100km를 못냈다며 못내 아쉬워하셨다. 하지만 우리는 저 멀리 땅끝탑에서부터 해남까지 공짜로 완도까지 온 것이다. 트럭에서 내리자마자의 시각은 3시. 완도 항만 찾아가면 제주도에 갈 수 있다! 이런 드라마틱 순간이!!

 우리는 아저씨께 정말 감사드리며 고장난 자전거를 타고 앞으로 달렸다. 늦지 않았다. 완도 항만을 찾아 우리는 정신 바싹 차리고 페달을 힘껏 밟았다. 완도 항을 찾아가는데 걸린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완도 여객 터미널! 바로 우리 눈 앞에 있다. 자전거도 고장 난 채로 우리는 시간 내에 완도 항에 도착한 것이다. 이제 표만 끊기만 하면 대륙에서 발을 떼어 제주도를 밟게 된다. 눈 앞에 보이는 완도 여객 터미널이라는 간판은 마치 자석처럼 우리를 끌어당겼다. 우리는 흥분되 터질 것 같은 심장을 가라앉히고 터미널 안에 들어가려는 순간.. 수위아저씨가 나오시며 어디로 갈 거냐고 물으셨다. 우리는 다같이 제주도! 하고 외쳤다. 하지만 아저씨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시며 배는 이미 출발했다고 하셨다. 오늘 배는 3시 출발이라는 것이셨다. 우리는 모두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 이렇게 드라마틱하게 완도 항에 올 수 있었는데 오늘 제주도에 갈 수 없다니.. 그 실망감이란 차라리 처음부터 배 시간이 3시였다는 것을 알았으면 덜 했을 것이다.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우리는 그간 피로나 확 풀어 버리자며 치킨집에서 닭 두 마리를 실컷 먹고 찜질방을 찾았다. 찜질방 찾는 것은 쉽지 않았지만 우리는 시간이 많았기에 쉬엄쉬엄 찾았다. 먼저 찜질방에 짐들을 맡겨 두고 우리는 완도를 돌아다니며 놀기로 했다. 우리가 놀 곳은 신지. 배를 타고 10분 만 가면 되는 곳이다. 자전거를 싣더라도 드는 돈은 겨우 400원. 배에 타서 우리는 즐겁게 신지라는 곳을 향했다. 신지에 도착하자 우리를 맏이 한 것은 엄청난 오르막길들. 마치 워크래프트 3를 보는 듯한 3D스러운 길들이 눈을 의심케 하였다. 섬에 난 길이라 이렇게 심한 경사란 말인가. 우리 여행 내내 최고의 경사였다. 그래도 내리막을 잘 이용하여 오르막 반 까지 올라간 다음 힘차게 페달을 밟아 앞으로 갔다. 우리가 찾아가는 곳은 신지에 있는 망사십리 해수욕장이다. 망사십리 해수욕장은 우리생각보다 훨씬 아름다웠다. 물도 굉장히 맑았고 백사장도 정말 깨끗했다. 사람도 별로 없어서 한적한 것이 매우 좋았다.

 우리는 그 곳 주민들이 뭔가 잡고 있길래 물었더니 조그만 고둥 같은 것을 잡고 있다 하였다. 우리도 이에 질세라 모자하나 희생하여 한 가득을 잡았다. 또 백사장에 사는 게들을 잡아보려 노력하였으나 게는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다. 슬슬 해가 지려하자 우리는 망사십리 해수욕장을 뒤로 하고 신지 항으로 갔다. 가는 중간에 갯벌에 놓여있는 어항을 뒤집어 보려다가 엄청난 게 때들을 발견한다. 우리는 여행 내내 게들은 많이 보았어도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다 잡어버릴 테다 라고 우리는 다짐을 하고 돌들을 들추기 시작했다. 백사장 게보다는 스피드가 느려서 돌만 들췄다하면 쉽게 잡을 수 있었다. 우리는 금방 많은 양의 게들을 모을 수 있었다. 또 나머지 모자를 희생해서 게들을 담았다. 그리고 더 어두워지기 전에 신지 항으로 향했다. 우리는 출발 10분전에 정확히 도착할 수 있었다. 가게에서 음료수랑 과자 하나씩 먹으면서 신지를 떠나 다시 완도를 향했다. 완도에 도착한 우리는 고둥과 게를 어떡해할까 고민하다가 찜질방에 맡겨둔 가스와 버너만 꺼내기로 했다. 그런데 찜질방 아줌마가 안에서 해도 된다고 하셔서 그냥 안에서 펼치기로 했다. 그런데 모자를 열자마자 게들이 무서운 기세로 바깥으로 나오려고 발광을 했다. 소름이 쫙 돋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손을 잽싸게 놀려서 빠져나간 게들을 다시 집어넣었다. 그리고 게를 삶아 먹으려고 했는데 어쩔 줄 몰라하자 아줌마가 한 숨을 쉬시며 된장국에 넣어 끓여주시겠다시며 우리 게들을 가져가셨다. 고둥은 뻘을 하루동안 뱉어내야 하므로 안된다고 하셨고 게 된장국은 금방 완성이 되었다. 아줌마가 밥은 없어도 되냐고 하시자 우리는 죄송한 마음에 그냥 국만 먹을께요했더니 또 한 번 한숨 쉬시더니 밥 한 대접과 김치무더기를 가져다 주셨다. 열심히 먹었다.

 배불리 먹고 난 후 우리는 샤워도 하고 찜질방에서 땀도 쫘악 뺐다. 그간의 피로가 한 꺼번에 풀렸다. 찜질방에 한 세 번 들어가고 우리는 잘 준비를 하였다. 제주도에 가지 못한 대신에 여기서 피로를 다 풀고 가려는 작정이었다. 우리가 잠자리를 펴기 30분 전에 국토일주 하는 녀석들인지 동네 양아치들인지 녀석들이 들어와서 샤워도 안하더니 수면실을 차지해버렸다. 세상에.. 우리는 그 녀석들의 천둥같이 코고는 소리를 들으며 완도에서의.. 한반도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그렇다. 내일 아침 8시에는 분명히 한반도를 떠날 것이다. 우리의 자전거와 함께

by hoyarius | 2006/12/03 18:27 | Before | 트랙백

[20020822-24] 자전거 국토종단 제 2부

 

 

자전거 국토종단 제 2부

 

Let’s run!!

 

 

 

l       2002년 8월 22일 (군산 ~ 고창)

 

 난 역시 먼저 일어났다. 비염이 있는데 여행하는 중이라 잠을 제대로 못 자기 때문이다. 혼자 여섯시 반에 일어나서 먼저 씻고 애 들을 깨웠다. 한 시간쯤 후에 라면과 삶은 계란으로 아침을 때웠다. 역시 오늘도 커피 한 잔으로 후식을 하고 8시 쯤 출발 준비를 마쳤다. 오늘은 비가 온다는 소식이 있었는데 역시나 하늘이 꾸물꾸물 한 것이 여간 심상치가 않았다. 그래서 뒤에 짐은 비닐로 똘똘 말아서 묶고 비옷은 꺼내서 바로 입을 수 있게 준비하였다. 그리고 출발 전에 사진 몇 방 재미있게 찍고 우리가 편히 묶을 수 있었던 고마운 공원을 뒤로 한 채 힘차게 페달을 밟았다. 우리는 군산시를 지나갔다. 군산은 자전거 도로도 깨끗하게 되어있었고 옆에 바다를 끼고 있어서 자전거를 타기 참으로 좋게 되어있었다. 자전거 도로 옆은 수많은 코스모스로 장식이 되어있었다. 우리는 군산을 빠져나가기 전에 명섭이의 앞 타이어를 갈게 된다. 어차피 갈아야 할 타이어 펑크라도 덜 나게 미리 갈았던 것이다. 그 동안 상욱이랑 나는 공금에서 돈을 좀 더 빼고 코펠이나 숟가락을 사러 돌아다니기도 했다. 이제 슬슬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비옷을 챙겨 입고 9시 30분쯤 군산을 빠져 나오게 된다. 그 이후는 어느 곳과 다르지 않은 국도. 옆에는 논, 앞에는 차도. 끊임없이 이어지는 차도를 향해 자전거를 밟는데 다른 때와 다른 것이 있다면 비가 떨어지며 내 비옷을 때리는 소리가 리드미컬하게 들린 다는 것 뿐이었다. 아침에는 비가 덜 왔는데 그래서인지 좀 지루하게 행군을 하였다. 주유소에서 좀 쉴 겸 해서 삶은 달걀 싸온 것을 몇 개 까먹었다. 주유소 아저씨한테 물충전 하는 것은 이제 일도 아니다.

 

 아.. 미리 말을 안 했는데 오늘 가려는 고창이라는 곳에는 석정온천이 있다. 오늘은 석정온천에서 몸을 좀 데우려고 하는 것이었다. 그간 찬물로만 샤워를 해서 몸이 뻐근한지라 오늘은 온천물에 몸 좀 담궈보자 해서 이렇게 비가 쏟아짐에도 불구하고 먼 길을 떠나려는 것이었다. 주유소를 떠나니 비가 좀 더 쏟아지기 시작하였고 더 가니 이제는 비가 아예 쏟아붇기 시작하였다. 맙소사.. 비에 아주 홀딱 젖어버렸다. 하지만 열심히 자전거를 밟으니 추운 것은 문제가 안되었고 오히려 기분이 아주 묘했다. 우천행군이라.. 우리는 달리면서 비에 관련된 노래들을 했다. 자전거를 달리면서 노래를 하는 일이 얼마나 상쾌한 일인지 모른다. 우리가  신나게 달리고 있노라니 옆에 지나가던 휴가를 가던 가족 중 어린 녀석하나가 우리를 보고 파이팅이라고 외친다. 난 녀석이 우리를 보고 놀리는 줄 알고 뒤에서 나불나불 거렸는데 알고보니 파이팅이라고 한 것이란다. 그 말을 다시 듣고 보니 기분이 좀 괜찮더군. 우천행군은 굉장히 즐겁고 기분 좋은 일이었지만  더 달리다 보니 이제 슬슬 지치기도 하고 밥 먹을 시간도 점점 가까워왔다. 기운이 없어지다 보니 이제는 추워지기 까지 하였다.

어떤 다리를 건너는데 비가 정말 엄청나게 쏟아졌다. 다행히 바람은 안 불어서 들이치지는 않았는데 그래도 이제는 정말 추웠다. 우리는 다리 중간쯤 있던 어떤 휴게소에서 비빔밥을 먹을 까 고민을 하다가 이렇게 추운 날은 짱께를 먹자! 라고 결정. 다시 진군을 하면서 나오는 중국집에서 바로 짬뽕밥을 먹기로 하였다. 그리고 그 다리의 마지막 부분을 건너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길은 매우 좁고 차량도 많아서 몇 번이나 넘어질 뻔하였고 차들도 지나가면서 물을 쫘악~ 튀기고 지나갔다. 으으.. 우리가 뭐 덤빌 수 있는 상황이 아닌지라 어쩔 수 없었지만 우리는 짬뽕밥만을 머리 속에 떠올리며 앞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다리를 건너자 마자 조그만 마을이 하나 나왔다. 역시 주유소 사람에게 물어보니 조금 더 가면 중국집이 있다는 말을 듣는 순간 눈이 번쩍 뜨였다. 우리는 화장실에서 일만 보고 눈에 불을 켜고 ‘중화’라는 간판을 찾아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조그만 중국집 하나 발견. 자전거를 제대로 묶지도 않고 비옷을 벗어 제낀 체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식당 안은 할아버지들의 아지트였던 모양인지 이미 식탁자리는 할아버지들게 모두 빼앗긴 상황. 우리는 할 수 없이 젖은 몸으로 방으로 들어갔다. 짬뽕밥 두 그릇과 짜장면 곱빼기 한 그릇. 그리고 고량주 한 병을 시켰다. 추운 몸을 데우기 위한 방편이었다. 음식이 나오기 전까지 옷을 좀 말리고 있었다. 식사가 나오자 마자 우리는 파리떼 처럼 음식에 달라붙었고 정신없이 밥을 먹었다. 한 잔씩 걸치는 고량주는 내 위장을 통해 내려가며 심장에 열기를 조금 씩 뿌려나갔고 짬뽕밥의 뜨거운 국물은 추위에 굳어있던 온 몸에 윤활유를 쳤다.

 

 밥을 다 먹고 우리는 늘어지게 누워있었다. 고창까지 앞으로 40에서 50킬로 남아있었다. 으.. 끔찍한 거리이기는 하지만 온천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 시간 정도 방에서 쉰 뒤 계산을 하고 다시 식당을 빠져나왔다. 이제 비는 오다 말다 짜증나게 내렸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이상하리 만치 오르막만 나오는 것이었다. 여태까지는 대부분의 길에서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다라는 교훈을 실감하면서 달렸었는데 이상하게 올라가기만 할 뿐이었다. 끝없는 오르막도 참 견디기 힘들었다. 지나가다가 있던 휴게소에서 커피나 하나씩 뽑아먹으며 라디오를 틀었다. 아직도 갈 길은 멀었다. 오르막이라서 거리가 성큼성큼 줄지 않았다. 지루하게 달리면서 결국에는 고창에 도착하게 된다. 처음에 고창에 도착하면 석정온천이라는 이정표가 나올 줄 알았는데 고창에 들어가서도 석정온천이 나오지 않아서 심히 걱정을 했었다. 하지만 좀 더 들어가니 역시 이정표가 갈색으로 표시되어 있었고 그 이정표는 고창의 변두리 쪽으로 가라고 우리에게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얼마쯤 갔을 까.. 한 10도 이상은 되 보이는 오르막을 지나고 지나가던 사람에게 물으니 차 타고 5분쯤 가면 있다고 하였다. 그 때 부터는 버스 정류장에도 석정온천이라는 표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여기도 자전거 길이 있어서 안전하게 주행을 할 수 있었다. 가던 길에 9900원에 순살치킨 두 마리를 준다는 가게가 있어서 솔깃하기는 했지만 온천이 급선무였다. 일단 여관에 자리를 잡고 온천에 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눈 앞에 나타난 석정온천은 산 중턱에 있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아침 8시부터 지금 5시까지 정말 열심히 자전거를 밟았다. 더 이상 오르막을 올라갈 기력이라고는 있지 않았다. 눈 앞에 고지를 두고 우리는 너무 괴로워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내린 결론. 옆에 있던 모텔에 가격을 물어보고 싸면 그 곳에 들어가자는 것이었다. 상욱이가 주인한테 물어본 결과 30000원짜리 방에서 5000원을 더 빼주겠다고 하였다. 어예! 우리는 횡재라며 잽싸게 자전거를 묶어두고 짐을 챙겨서 3층 방으로 들어갔다. 방은 깨끗하고 따뜻한 물도 나오는 곳이었다. 우리는 온천물은 아니지만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할 수 있었다. 비록 내가 첫 번째로 했을 때는 보일러를 켜지 않아서 찬물로 샤워했지만 그래도 뜨끈하고 뽀송뽀송한 방바닥이 너무 행복했다. 우리는 6000원 이나 하는 제육덮밥을 시켜서 1시간 씩이나 기다리며 욕을 하면서 먹었다. 그 거 하나 기분이 상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오늘만큼은 밤늦게 까지 드라마도 보고 어여쁜 연예인들의 얼굴도 구경하고 잠에 빠져갔다. 정말 오래간만에 습기 없는 포근한 잠자리였다.

 

 

 

 

l       2002년 8월 23일 (고창 ~ 톱머리 해수욕장)

 

 코가 막히는 나는 또 먼저 일어났다. 이번에는 아침에 혼자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할 수 있었다. 온 몸에 흐르는 피가 따뜻하게 데워져서 빠르게 도는 느낌에 매우 나른해졌다. 혼자서 지도를 보며 오늘 가야 할 길을 좀 살펴보았다. 사실 모레 땅끝에 도착하려면 오늘 내일 달려야 할 거리가 엄청날 뿐만 아니라 오늘 묶어야 할 곳도 마땅치가 않았다. 그리고 어제 힘들게 오르기만 했던 오르막은 알고 보니 내장산 국립공원 자락이어서 그랬던 것이었다. 늦게나마 그 사실을 알고 괴로워하며 오늘 달릴 길을 체크하다 보니 코가 좀 뚫려서 다시 잠을 좀 잤다. 일어나서 커피만 한 잔씩 끓여 마시고 11시 쯤에 모텔을 떠났다. 그런데 출발하자마자 상욱이 뒷 바퀴에 바람이 빠져있는 것이었다. 일단 대충 바람을 넣고 고창시 안으로 들어갔다. 젖은 빨래를 빨래방에서 건조시키기로 하고 오늘도 역시 고기부페를 찾아갔다. 아침 겸 점심으로 많이 먹고 오늘 달려야 할 멀고먼 거리를 성공리에 달릴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역시 여기서도 다섯 접시를 배불리 구워먹고 또 화장실에서 한 바탕 했다. 우리가 화장실에서 한 바탕 하는 동안 상욱이는 펑크난 자전거를 고치러 자전거포에 갔다. 우리가 일을 다보고 가봤더니 역시나 얇은 철사가 타이어에 박혀 있었다. 마저 수리하고 건조시키려던 빨래를 찾고 고창시를 빠져나왔다. 그 때 시간 1시 30분. 너무 시간이 늦었었다. 꾸물거리던 우리를 자책하며 달리고 있는데 얼마 안가서 명섭이의 자전거에 또 문제가 생겼다. 체인이 기어변속기에 먹혀서 빠지지 않는 것이었다. 한시간 여 동안 고치려고 노력을 해보았으나 소용이 없었다. 그 때 시간 두시 반.. 원래 출발 시간도 늦어버렸는데 하는 수 없었다. 오늘도 히치하이킹. 그런데 이 곳에서 거쳐가는 도시 중에 마땅한 큰 도시가 없는 지라 트럭들이 많이 지나다니지를 않았다. 걱정이었다. 지나가던 트럭들도 멈추지 않고 그냥 지나쳐 갈 뿐이었다. 망연자실 우리는 앉아있었지만 트럭이 지나다닐 때마다 우리는 멈추지 않고 손을 흔들었다. 역시.. 한 대의 트럭이 우리 옆에 멈춰섰다. 우리는 가는 길에 있는 작은 도시에만 내려달라는 아저씨한테 부탁을 그 아저씨는 고민 끝에 우리의 부탁을 들어주셨다. 또 공짜로 시간을 벌다! 이번에는 우리 셋 다 뒤에 앉아서 기뻐하며 13km 정도를 공짜로 갈 수 있었다. 너무 아쉽게도 빨리 나와버린 마을.. 우리는 안타까워하며 짐들을 내리고 아저씨한테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한테 물어 물어 자전거포를 찾아갔다. 자전거포의 아저씨는 안계셨지만 아줌마가 면장갑을 끼고 체인을 몇 번 팍팍 땡기니 곧 고쳐져버렸다. 허무한 우리..  다시 우리는 중간도시인 영광을 향해 자전거 핸들을 돌렸다. 영광까지는 40분 만에 도착을 할 수 있었다. 날씨가 좀 더운지라 영광에서 음료수와 아이스크림을 사먹으며 지나다니는 교복 입은 이쁜 여학생들을 보며 즐거운 기분을 감추지 않았다.

 

 영광에서는 한 20분 쉬고 4시쯤 출발을 하였다. 여기부터는 역시 오르막의 길이가 무시무시했고 내리막의 길이도 시원시원했다. 평지가 거의 없었다. 거의 언덕만 넘어 다니는 꼴이었다. 오르막 하나 넘을 때마다 흘리는 땀이 장난이 아니었다. 그렇게 힘들게 언덕을 넘어다닌 결과 두시간 정도 지나서 두 번째 중간도시 함평(나비의 고장)을 지나갈 수 있었다. 함평을 지나가는 도중 내 짐받이가 떨어져서 고생을 했는데 옆에 있던 카센터에서 금방 해결을 할 수가 있었다. 카센터 사람들이 투덜대는 모습이기는 했지만 별 말 없이 친절하게 고쳐주었다. 그리고 거기서 우리가 오늘 묶을 곳을 결정하기 위해 톱머리 해수욕장에 갈까 아니면 그 전에 있는 돌머리 해수욕장에 갈까 고민을 하였다. 그러다가 내린 결과.. 돌머리 해수욕장에서 묵으면 분명 내일 하루 만에 땅끝에 도달하지 못한다. 오늘 야간행군을 감행하더라도 톱머리 해수욕장까지 가자는 것이었다. 옳은 판단이었다. 슬슬 어두워지기 시작하자 우리는 더욱 힘껏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중간에 우리를 방해하는 것이 또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수박밭이었다. 또 한 번 서리를 해주었다. 이번에는 밭이 젖어있어서 푹푹 빠져서 고생을 좀 하기는 했지만 괜찮은 수박 두 개를 집어서 밑으로 내려왔다. 또 주먹으로 뽀개고 이번에는 도구 없이 그냥 입으로 수박육질을 뜯어먹었다. 열심히 수분 보충하였으나 시간이 또 많이 늦어졌다. 해는 이미 뉘어졌고 또 한 번 힘차게 달려서 7시 30분쯤 되어서야 톱머리 해수욕장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작은 마을에 도달할 수 있었다. 이미 해는 다 떨어져서 매우 어두웠지만 그래도 우리는 목적지까지 성공리에 왔다는 사실에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조그만 가게에서 커다란 싸구려 햄이랑 김을 샀고 쌀집에서 두 끼니 정도의 쌀. 계란 열 개를 샀다. 오늘도 역시 소주 두 병과 라면 하나를 샀고 각자의 짐을 나눠 갖은 채 톱머리 해수욕장을 찾아 달리기 시작했다. 이제는 많이 어두워져서 차선만 보고 달릴 뿐이었다. 가다가 한 번 삼거리를 놓쳐서 길을 잘못들기도 하였다. 하지만 한 시간쯤 헤집고 다닌 결과 톱머리 해수욕장에 들어가는 길을 찾아내었다.

 

 하지만 우리를 맞이한 것은 굳게 닫혀진 톱머리 해수욕장 입구였다. 아마 철이 끝나서 문을 잠궈놓은 모양이었다. 우리는 괴로워하며 머리를 싸맸다. 그리고 아까 가게에서 샀던 싸구려 꿀호떡과 허니레몬 음료수를 마시며 지친 몸을 달랬다. 뭔가를 좀 먹고나니 정신이 좀 맑아졌다. 그래서 아래 쪽에 불빛이 있는 것 같으니 길을 따라 밑으로 좀 더 내려가 보자는 명섭이의 의견에 동의하여 어두운 골목길을 따라 내려갔다. 역시나.. 밑에도 해수욕장이 있었고 옆에는 횟집이 몇 개가 듬성듬성 있었다. 우리는 횟집의 양해를 얻어 밥을 좀 해먹을 물과 장소만 빌려달라고 부탁했고 그 사이에 명섭이랑 나는 야영을 칠 곳이 있나 골목길을 좀 더 따라 들어가 보았다. 해수욕장은 백사장이 아니라 넓디 넓은 갯벌이었다. 모래사장 야영은 불가능 하였지만 옆에 원두막 같은 것이 있어서 거기다 텐트를 치기 안성맞춤이었다. 게다가 아직 문을 닫지 않은 샤워장이 하나 있어서 밥을 먹고 샤워도 할 수가 있었다. 먼저 우리는 야영칠 곳만 확인하고 횟집으로 다시 가서 우리의 첫 취사를 해보았다. 코펠뚜껑은 없었지만 은박지로 겹겹이 싸고 후라이팬으로 덥고 그 위에 음료수통도 얹었다. 결과는 대 성공이었다. 우리의 첫 취사치고는 든든한 밥이 완성되었다. 밥을 먼저 완성시키고 후라이팬에 스팸을 잘라서 구웠다. 그리고 준비한 김을 뜯어 훌륭한 밥상을 마련할 수가 있었다. 횟집의 후원(?)으로 모기장안에서 밥을 먹을 수 있었다. 우리는 든든하게 저녁을 해결하고 야영칠 곳을 향해 자전거를 내달았다. 이제는 텐트도 재빨리 칠 수 있다. 할아버지가 혼자서 외로이 운영하는 샤워장에서 우리는 깨끗하게 샤워를 할 수 있었다. 할아버지는 귀가 잘 안들리시는 데 너무 외롭고 힘들어 보이셨다. 하지만 큰 목소리로 우리에게 물도 마음껏 쓰라고 하시고 돈 계산도 잘하셔서 정정하신 모습에 한 숨을 놓았다. 우리는 샤워 알아서 잘할 테니 걱정 마시고 주무시라고 말씀드리고 조용조용 샤워장을 이용했다. 그리고 우리는 준비한 소주를 마시기 위해 술자리를 셋팅(?)했다. 우리는 바닷물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위한 벽에 걸쳐앉고 참치라면과 과자, 허니레몬을 섞은 레몬소주를 준비하였다.

 

 톱머리 해수욕장에서의 분위기는 환상적이고도 몽환적이었다. 저 멀리서 찰싹이며 들어오는 바닷물, 새까만 하늘에 커다랗게 박혀있는 보름달은 아무런 불을 켜지 않아도 서로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매우 밝았다. 게다가 오늘의 야간행군은 굉장히 긴장되면서도 짜릿한 것이었기 때문에 우리의 기분은 매우 달아있는 상태였다. 준비한 두 병의 술말고도 술 두병을 더 사왔다. 우리는 소주의 알코올에 취하지 않았다. 대자연이 뿜어내는 분위기에 취하고 말았다. 말없이 저 바다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예쁜 여자친구 생각도 뭉클하게 솟아나고 서울에 있는 가족들, 사람들 생각이 간절하게 났다. 환상적인 톱머리 해수욕장의 까만 밤바다 Background. 은은하고 아름다운 은빛 달의 Spotlight. 인간이라는 때묻은 존재가 만들어낸 말로는 반 만큼도 표현할 수 없는 환상적인 아름다움이었다.

 

 

l       2002년 8월 24일 (톱머리 해수욕장 ~ 송호리 해수욕장)

 

 오늘은 정말 많은 거리를 달려야 하는 날이다. 아마 120km는 훨씬 더 달려야 할 것이다. 게다가 가는 길도 확실한 루트가 없는지라 정말 고생이 훤한 하루였다. 다들 6시 30분에 일어났다. 일어나서 어제 미리 사뒀던 소시지를 은박지 후라이팬을 이용하여 따끈하게 데워먹고 라면국물에 밥도 말아먹었다. 든든하지는 못한 아침식사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탄수화물을 섭취하니 기운은 차릴 수 있었다. 샤워장을 하시던 할아버지가 평상을 좀 돌려달라는 부탁을 흔쾌히 받아들였더니 할아버지께서 제대로 된 수박 한 덩이를 가져다 주셨다. 그것마저 후식으로 가뿐하게 먹고 떠날 채비를 한 시각이 10시. 할아버지께 인사를 드리고 목포를 향해 출발하였다. 원래 어제 목포까지 갔으면 좋았는데 어제로서는 최선을 다했었다. 일단 목포를 향해 가는 국도를 찾아 열심히 달렸다. 국도에 도달하기까지 힘든 오르막들이 있었지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클래식을 들으며 달리니 기분도 상쾌하고 좋았다. 국도와 합쳐지는 길이 나왔다. 여기서부터는 차량도 많아 매연도 많았을 뿐더러 날씨도 많이 더워졋다. 등뒤로 따갑게 내리쬐는 햇살이 참기 힘들었다. 설상가상으로 내 자전거에 또 펑크가 나버리게 된다. 이번에는 커다란 못을 밟아서 터지게 된다. 내리쬐는 태양빛 아래서 겨우겨우 펑크를 막아내고 다시 한 번 달린다. 가는 길에 울퉁불퉁한 곳을 지나다가 내 라이트를 깨뜨리고 만다. 짜증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펑크를 때웠어도 뒷 바퀴의 바람은 여전히 세고 있고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았다. 목포 종합 관광안내소에서 전라도 지도 한 장 받아내고 깨끗한 화장실에서 좀 씻기도 하고 펑크도 다시 한 번 때웠다.

 힘들게 목포에 도착한 우리는 이마트에서 점심을 해결하기로 한다. 원래는 시식코너에서 때워보려 하였으나 너무 쪽팔린 관계로 식빵과 잼 같은 것을 사서 영양가 있게 배불리 먹기로 결정한 것이다. 게다가 이마트 안은 매우 시원할 것이라고 예상. 그 예상은 그대로 적중한다. 식빵이랑 꿀호떡이랑 바나나. 우유 두 통. 김밥. 이렇게 사고 나니 꽤나 많은 꾸러미가 생겼다. 맥도날드 구석에서 쭈그리고 앉아서 열심히 먹어댔다. 열심히 달려야 했기 때문에 배불리 먹어야했다. 그렇게 먹고 쉬는 데 1시간 정도 소요되었다. 이마트 화장실이 깨끗했던지라 우리는 거기서 세수도 하고 손도 깨끗이 씻고 볼 일도 다 마치고 목포를 떠날 채비를 갖춘다. 목포를 건너 해남으로 넘어가려면 일단 영산강 하구둑을 찾아가야 한다. 가기 전 명섭이 자전거 브레이크도 갈고 뜨거운 햇살을 피하며 아이스크림 하나씩 먹으면서 열기를 좀 가라 앉혔다. 땅바닥에 흘린 고드름 얼음조각도 주워먹으며 열기를 다 식힌 시간이 2시. 뜨거운 태양에 대항하여 우리는 목포를 벗어나기 시작한다. 영산강 하구둑은 꽤나 컸는데 그 위에서 우리는 웃통을 다 벗고 쇼를 한 바탕 벌이며 웃기도 했다. 지나가는 차들이 그 대로 다 봤을 터인데 우리는 개의치 않고 사진도 찍고 신나게 놀았다. 영산강 하국둑을 건너고 목포공항을 지나가려 하니 어제 장난삼아 말했던 1km 길이의 언덕이 눈앞에 보였다. 끔찍했다. 코너를 돌고 돌아도 끝이 보이지 않던 언덕이었다. 그래도 우리는 한 번도 자전거에서 내리지 않고 겨우 고개를 넘었다. 마지막으로 금호 하구둑을 건너자 이러한 이정표가 우리를 맞이한다.

 

땅끝마을 해남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드디어 마지막 땅이다. 서울.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까지 넘어와 마지막 동네인 해남땅에 들어선 것이다. 하지만 뜨겁게 달아오른 태양의 열기는 사그러들 줄 모르고 우리를 마치 통닭처럼 익혀버렸다. 우리는 금호 하구둑을 넘어서 구멍가게 하나만을 찾아서 정신없이 달렸다. 다들 더위를 먹어 미칠 지경이 되었어도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시원한 아이스크림을 찾아서 열심히 달렸다. 그러나 그 가게 하나가 왜 그리도 안나오는지 참… 아마 5분만 더 달렸으면 탈진하고 말았을 것이다.

 

 구멍가게에서 음료수랑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기력 충전을 좀 했다. 가야 할 길이 아직도 멀었다. 반도 못 왔으니 말이다. 우리는 더 이상 지체하지 않고 금방 가게를 떠났다. 두 시간 반쯤 달렸을까.. 옆에 있던 주유소에 들어가서 사람들한테 송호리 해수욕장이 어디냐고 물어봤더니 아직도 더 가야 한다고 했다. 아찔.. 아.. 이렇게 달렸는데도 많이 가야한다니.. 우리는 심각하게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무리하지 않고 근처에서 잠을 자느냐 아니면 기록상의 문제이니 야간행군을 해서 땅끝에 도달할 것인가.. 일단은 근처에 있던 가까운 마트에서 목살이랑 삼겹살을 1kg정도를 사고 점심에 샀던 꿀호떡이랑 우유를 마셨다. 이마트에서 샀던 바나나는 다 짜부러져서 못 먹을 지경이 되었다. 우리는 지금 닥친 상황을 이렇게 해결하기로 했다. 여기서는 허기만 채우고 야간행군을 하자. 야간행군을 해서 끝까지 달린 다음 거기서 우리 고기를 구워먹자. 과연 가능할 것인가 의심스러운 결정이었지만 하는 수 없이 앞으로 나가는 것만이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였다. 달렸다. 끝도 없이 달렸다. 구름이 많이 껴서 보름달이 뜰까 걱정했지만 이윽고 구름이 걷히고 보름달 조명이 밝아지기 시작했다. 시원하고 상쾌한 야간행군의 조건이 마련된 것이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달빛에만 의지할 수 있을 정도로 밝은 빛을 내지는 못하였다. 우리는 더디게 더디게 앞으로 나갔다. 하지만 어두워서 그런지 오르막을 올라도 오르막 같지 않았다. 난 이런 경험을 통해 눈에 보이는 것만 믿다가는 더 힘들겠군.. 이라는 생각도 했다.가다가 어떤 횟집에서 길을 물었더니 차로 에스코트를 해줄 테니 따라오라고 하였다. 처음에는 고맙기는 했는데 나중에는 번거롭기만 하였다. 차라리 우리 힘만으로 차선을 보고 달리는 것이 훨씬 수월했던 것이다. 적당한 곳에서 우리를 에스코트 해준 차는 떨궈버리고 하나 남은 라이트를 가운데로 포지션시키고 명섭이와 나는 양쪽에서 달렸다. 모두 후미등은 킨 상황이었다. 그러나 거의 차가 없어서 위험한 것은 없었지만 아예 없는 것도 아니었고 어두워서 매우 긴장이 되었다. 우리는 이 집 저 집에서 랜턴을 좀 달라고 부탁도 해보았으나 아무 곳에서도 랜턴을 빌려주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그냥 라이트 하나 만으로 달렸다. 하지만 시간이 점점 지남에 따라 달빛이 굉장히 밝아졌다. 약간 떨어진 거리에서도 사람의 얼굴을 식별할 정도의 밝기가 된 것이다. 힘들기는 했지만 분위기는 너무 좋았다. 옆에서 들리는 풀벌레소리는 스테레오로 들리는 지라 도로의 어느 쪽에서 달리던지 풀벌레 소리가 똑같이 들려왔다. 시원하게 달리다 보니 좀 큰 마을에 도달하였다. 거기에 있던 경찰서에서 랜턴을 빌려보려 하였으나 못 되먹은 경찰들의 행동과 말에 실망만 하고 뒤 돌아서는 욕만 하고 말았다. 캔커피를 하나씩 사 마신 우리는 다시 송호리 해수욕장을 향해 달렸다. 이미 톱머리에서 출발한 시각 이후로는 11시간이 지났다. 이제부터는 차량이 좀 많아졌다. 땅끝에 놀러가려는 관광차량 때문인 것 같았다. 하지만 보름달 빛도 매우 밝았고 우리의 길 눈도 밝아져서 별 문제는 없었다. 이제 육체적인 피로 따위 또한 문제가 되지 않았다. 어쩌면 그 피곤함에 취해버려 아무 생각 없이 페달을 밟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드디어 송호리 해수욕장의 이정표가 나타났다. 더 힘이 났다. 아까 지방도를 지나올 때 보다는 차량이 좀 많았지만 빨리 가서 쉬고 싶었기 때문에 끝도 없이 자전거를 내달았다. 하지만 오히려 이정표가 나오고서부터의 길은 너무나 멀게만 느껴졌다. 역시 다왔다! 싶어서 기대감에 젖어서 달리게 되면 너무 멀게만 느껴지는 것이었다. 전에 대천 해수욕장에 갈 때도 그랬던 것이 이번에도 똑같았다. 내 자전거의 뒷 바퀴는 계속해서 바람이 빠지고 있었지만 지속적으로 바람을 채워넣으며 열심히 달렸다. 산 중턱을 돌고 돌아서 다시 내려가고.. 어두운 산 그늘에 가려 보름달도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앞만 보고 달린 결과, 우리는 톱머리 해수욕장에서 출발한지 12시간 30분 만에 땅끝마을 해남땅에 있는 송호리 해수욕장에 도착할 수가 있었다. 밀려오는 성취감과 뿌듯함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아무도 가능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거리를 정말 열심히 달려서 우리는 해내었던 것이다. 서울을 떠나서 6일만에 이루어낸 쾌거였다.

 

 우리는 물이 나오는 곳과 샤워장을 체크하고 얼른 소나무 숲 아래에다가 야영을 쳤다. 그리고 지친 몸을 좀 씻고 저녁에 샀던 고기를 구웠다. 도착해서 맛있게 먹을 줄 알았던 고기는 너무 힘들었던 탓일까.. 그저 굽기 귀찮기만 했고 별로 감동적인 맛도 아니었다. 고기를 구울때는 옷걸이와 은박지를 여러 겹 싼 즉석 후라이팬을 사용했다. 12시간 30분을 달린 대가로써 성취감이라는 대가가 고기 1kg보다 훨씬 그윽하고 진했다. 우리는 첫 3일간의 즐거웠던 여행 이후 중반 3일간의 고된 주행을 통해 서울부터 땅끝까지 도달 할 수 있었다. 그렇다.

 

 우리는 우리의 힘 만으로 국토종단에 성공한 것이다.

 

by hoyarius | 2006/12/03 18:26 | Before | 트랙백

[20020819-21] 자전거 국토종단 제 1부

 

 

자전거 국토종단 제 1부

 

Funny Riding!!

 

 

 

l       2002년 8월 19일 (서울 ~ 아산)

 

 밤에 한 숨도 못자고 긴장할 줄 알았더니 잠만 실컷 잘 자버렸다. 아.. 어렸을 때는 소풍 전 날 비가 올 까 걱정도 되고 그랬었는데 요즘은 그런 동심도 없는 가 보다. 그래도 출발시간이 새벽 4시로 결정된지라 푹 자지는 못하고 일찍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상욱이의 핸드폰 전화에 깬 시간이 4시 30분. 그런데 밖에 후둑후둑 들리는 소리는?? 역시 내 예상대로 비가 오고 있다. 어제 상욱이 녀석이 출발 당일은 비가 올 걱정보다는 선크림 바를 걱정이나 하랬는데 이게 무엇인가.. 크윽.. 상욱이랑 논의 끝에 조금 더 자고 비가 그치면 출발하자고 결정을 내렸다. 6시 반쯤 다시 일어났는데 여전히 비는 내리고 있었다. 출발시간을 더 지체하기 싫어서 비가 살짝 그치자 마자 출발하자고 바로 전화를 때렸다. 부모님께 걱정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고 핸드폰의 종료버튼을 길게 눌렀다. 그리고 어제 챙겨둔 가방 세 개를 짊어지고 현관문을 나섰다. 무거운 짐 3개를 밖에 내려놓고 자전거까지 마저 내리고 나니 이제서야 떠나는 느낌이 조금 난다. 아무리 여름날의 아침이라지만 비온 뒤의 습기찬 하늘은 상쾌한 인사를 건네주었다. 먼저 세 개의 짐을 짐받이에 싣고 상욱이네 집으로 천천히 자전거를 밟았다. 상욱이도 곧 내려왔다. 우리는 먼저 텐트를 둘로 나누어서 다시 짐받이에 실었다. 주차장 저 쪽에서는 대학생 한 무리가 차를 타고 어디로 가려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저들도 우리만큼 흥분이 될까. 나는 자전거로 우리나라 국토를 밟는다는 생각만 해도 무지 긴장되고 흥분되어 있었다. 배분이 끝난 짐을 싸고 그 위에 다시 비닐로 감싸고 난 후 페달을 힘껏 밟았다. 수분을 가득 머금은 아침공기가 선선하게 얼굴을 감쌌다.

 

 먼저 명섭이네 동네로 가야했다. 가는 길은 인도로 되어있는지라 아직은 지나다니는 차를 걱정할 단계가 아니었다. 명섭이네 동네 도착은 7시 45분. 몇 번의 전화 시도 끝에 명섭이의 모습이 보였다. 녀석은 비옷과 군인모자를 쓴 채로 등장했다. 아..명섭이와 상욱이는 아는 사이가 아니었다. 하지만 두 놈 다 좋은 놈이라 금방 친해질 것이었고 이번 여행 성공리에 마칠 수 있는 그러한 놈들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었다. 통성명을 마치고 다시 짐을 배분하였다. 다시 비가 살짝 흩뿌리고 있었다. 이제 진짜 출발이다. 한번도 가보지 않을 길을 따라 한 번도 가보지 않을 곳을 향한 진정한 첫 폐달을 밟은 것이다.

 

맨 처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비옷을 사는 것이었다. 나랑 상욱이는 비옷이 없는지라 이대로 달렸다가는 온통 젖어버릴 것이었다. 그래서 서울을 막 벗어난 곳에 있는 만물상에 들어가서 노란색 비옷 두 벌을 샀다. 바지까지 있었는데 바지는 버려버리고 웃옷만 챙겼다. 그리고 명섭이가 아침을 먹지 않고 나와서 근방에 있는 분식집에서 김밥 두 줄을 사먹었다. 맛있는 김밥재료도 들어있지 않은 김밥을 2000원이나 받았다고 궁시렁 거리면서 다시 우리는 비옷을 챙겨 입었다. 오늘 우리의 목적지는 평택이었다. 일단 평택까지 가기 위해서는 수원보다는 오산을 거쳐가는 것이 더 가깝다고 생각하여 일단 수지쪽으로 계속해서 달렸다. 가는 길에 차도에 물이 고인 곳을 지날 때면 어김없이 물세레를 뒤집어 쓰곤 했다. 중간에 쉴 겸 해서 수원근처의 어떤 초등학교 교단에서 비도 피하고 지도도 살펴봤다. 처음에는 지도도 별로 볼 필요도 없지만 그래도 이렇게 지도 살펴보고 달리고 그러는 게 너무 재미있다. 점심을 어디서 먹을까 고민하다가 그냥 일단은 달리기로 했다. 달리다 보니 수원경기장도 나오고 수원시장이 나와버렸다. 원래 수원경기장을 지날 생각은 아니었지만 기왕 온김에 수원경기장에서 사진도 한 방 찍고 점심이나 먹을 겸해서 주위에 있는 시장을 찾아보았다. 시장에서 명섭이 자전거 손 좀 보고 소형라디오를 하나 씩 샀다. 사실 이것은 여행 내내 잘 쓰지않게 되는 안타까운 물건이다. 또한 명섭이의 자전거 수리행진의 시작이 벌써 시작되고 말았다. 물론 우리는 이렇게 자전거가 허접한 것들일 줄을 꿈에나 상상해보았을까나.. 어쨌든 점심휴식시간을 통해 나는 사비로 샌달 하나를 구입했다. 슬리퍼나 운동화보다는 샌달이 나을 것 같아서 샀는데 나중에는 샌달만 신게된다. 시장에서 볼 일을 다 본 후 근처에 있던 순대국밥집에 갔다. 그 때 시간 12시쯤.. 비를 좀 맞아서 추웠는데 뚝배기에 담긴 뜨끈뜨끈한 국물을 한 숟갈 떠먹으니 감동이 밀려왔다. 국물도 사골국으로 끓였고 순대도 보통순대가 아니라 평양순대인지 아무튼 속이 꽉꽉 찬 맛있는 순대였다. 다들 맛나고 배부르게 한 끼를 때웠다.

 

새로 산 라디오.. 주파수도 잘 안 잡혀서 지지직 거리는 애물단지를 들고 중간도시인 오산을 향해 달렸다. 비는 더 이상 우리를 방해하지는 않았다.가는 길에 이제 인도는 사라지고 도로의 갓 길을 이용해야 했다. 안전에는 별 문제가 없었지만 옆에 자꾸 차가 쌩쌩 지나다니니 거슬리기는 했다. 오산에서 아이스크림을 사먹으며 지도를 다시 한 번 봤는데 오늘 평택보다 멀리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오늘의 목적지를 아산으로 바꾸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조금 더 열심히 밟아야 했다. 사실 이것은 지금 생각해보면 그 많은 짐들을 싸매고 굉장히 많은 거리를 달린.. 한마디로 ‘오바’였다. 오산을 지나쳐가면서 쉴 곳을 좀 찾았는데 지나가던 사람한테 물어서 근처 약수터에서 물도 마시고 잠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여행 내내 이렇게 좋은 휴식터는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우리는 그럴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시원한 약수도 실컷 마시고 몸도 좀 씻고 마신 물을 쏴아~ 뱉어(?)내기도 하고 시원하게 쉬었다.

 

평택 쯤 가서 우리의 첫 자전거 말썽. 명섭이 바퀴에 펑크가 났다. 나는 자전거 여행을 준비하며 아무리 자전거를 많이 달린다고 해도 펑크가 그리 쉽게 나는 이유가 뭘까..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명섭이가 자전거를 타면서 못을 밟았던 것이다. 펑크라는 것이 무리해서 나는 게 아니라 타이어가 얇은 경우 못을 밟으면 타이어가 찢어진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가 직접 펑크를 때워보는 것은 처음이었지만 그 전 날 상욱이랑 나는 펑크 때우는 강의를 인터넷으로 본지라 손쉽게 때웠다. 거품구멍을 확인할 물도 없었고 코펠도 꺼내기 힘들어서 그냥 옆에 고였 있던 썩은 듯한 물을 이용하였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중대한 사실을 하나 깨닫지 못했기에 하루종일 고생하게 된다. 펑크를 때웠는데도 계속해서 바람이 조금씩 빠지는 것이었는데 그 이유를 깨닫는 데는 하루가 걸린다. 그래도 일단 목적지가 가까워진지라 바람이 좀 빠질라치면 펌프로 바람을 채워넣고 또 빠지면 또 넣고 해서 열심히 달렸다. 그래도 바퀴에 바람이 빠진 명섭이의 속도가 우리랑 비슷해서 다행이었다. 정작 본인은 힘들었겠지만.. ^^ 가는 길에 목도 마르고 해서 길에서 파는 과일을 몇 개 먹자 해서 복숭아 세 개랑 사과 세 개를 샀다. 두 개 천원이라길래 우리는 비싸다고 우겼지만 나중에 안 사실인데 굉장히 쌌던 거였다. 얼마나 아저씨가 황당했을까.. 하지만 비싸다고 생각하고 먹었던 탓인지 아니면 진짜 맛있었던 것인지 내 생애 최고의 맛있는 과일이었다. 복숭아를 한 입 물었을 때 소름이 쫘악 돋을 정도로 정말 맛있었다. 달콤하고 시원하고 정말 짜릿한 복숭아와 사과였다.

 

 저녁이 될 무렵해서 근처에 있던 가게에서 찹쌀떡을 하나 씩 사먹었다. 배가 고픈지라 정말 이번에도 또한 감동을 하면서 먹었다. 여행을 하면서 먹는 간단한 이런 것들이 정말 꿀맛이었다. 그리고 가게 아저씨한테 물어본 결과 텐트를 칠만한 학교가 이 앞 언덕만 넘으면 있다는 사실도 알아내었다. 우리는 힘을 내어서 자전거를 더욱 밟았다. 하지만 그 날 피로가 쌓인지라 그 마지막 언덕을 타고 넘지는 못했고 결국 지친 우리는 내려서 자전거를 끌고 올라갔다. 땀을 뻘뻘 흘리고 올라간 언덕에서부터 내려가는 내리막이란.. 그 동안 흘린 땀을 모두 날려버리는 그런 시원함이었다. 근처 학교에 도착한 우리는 먼저 수위아저씨를 찾았다. 아무리 찾아도 수위아저씨가 없길래 그냥 우리는 학교 뒤 쪽 수돗가 근처에서 비닐을 깔고 텐트를 치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주위에 지나가던 할머니가…

 

“ 아유~ 학생들 거기다 텐트를 치면 어떡해. 습기 많아서 병 걸려요. 우리 빈 방 하나 있으니 그리고 어여 와요.”

 

으흑.. 첫 날부터 이렇게 기쁜 일이 있을 줄이야.. 우리는 짐을 잽싸게 챙겨서 할머니가 인도하는 집으로 향했다. 근처 관공서에 자전거는 매달아 놓고 할머니네 집으로 갔다. 우리가 쓸 방은 물도 콸콸 나오고 방도 넓고 꽤 쓸만 했다. 시골집이라 좀 지저분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우리로서는 대 만족이었다. 하지만… 이 방이 진짜로 ‘빈’ 방인지라 거기서 굶주려 있던 모기들이 뱀파이어들 처럼 우르르 우리에게 달려들었다! 우리는 괴로워하며 준비해온 모기향을 뱀파이어들에 맞섰다. 우리의 신선한 피를 저녁거리로 삼으려던 녀석들.. 금새 쓰러져버리고 우리는 쉽게 뱀파이어들의 방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방 안이 더운지라 땀을 뻘뻘 흘리면서 저녁으로 라면과 햇반을 하나 씩 먹었다. 잘 시간이 아닌 시간에 자야 했기 때문에 소주를 두 병 사서 한 잔씩 하며 우리 셋의 팀웍을 더욱 다지는 시간을 가졌다. 우리의 국토종단 첫 날. 이렇게 많은 일을 일기장에 그린 채 저물어갔다.

 

 

l       2002년 8월 20일 (아산 ~ 대천 해수욕장)

 

새벽 4시에 일어났다. 잠자리가 너무 불편하였다. 잘 곳은 이리 좋은데 잠이 안 오다니 참.. 오늘 목적지는 ‘대천 해수욕장’ 이었다. 얼른 씻고 아침을 준비하였다. 아침이래야 라면과 계란 4개. 커피도 한 잔씩 끓이면서 계란도 함께 삶았다. 오늘의 간식거리였다. 아침에 버려야 할 짐들을 한 쪽에 몰아넣었다. 운동화 샌달 우산 등을 모아서 한 가방 가득히 버리게 되었다. 그리고 명섭이 자전거 타이어 펑크난 것을 다시 손 보았다. 그런데 어제 깨닫지 못한 중대한 사실을 발견한 것이었다. 못에 찔려 펑크가 나면 항상 반대편을 살펴야 한다는 것이었다! 못이 반대편까지 뚫어버리므로 펑크는 두 개 이상 나게 되어있다. 결국 펑크를 완전히 때우고 할머니께 감사인사를 드리고 이튿 날 질주를 시작했다. 아침 일찍 해가 막 뜨기 직전 시원하게 달리는 기분이란 여행 초반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정말 상쾌했다.

 한 시간쯤 달렸을까… 명섭이 자전거에 또 문제가 생겼다. 이번에 또 펑크가 난 것이다. 해가 슬슬 나왔기 때문에 그늘로 자전거를 가져가서 수리를 시작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바람을 넣는 부분자체가 문제가 있었다. 한 시간 정도 기름을 묻혀가면서 우리 힘으로 고치려고 노력을 한 번 했다. 결국 두 손 들고 주유소 옆에 그늘에 누워버렸다. 이미 우리의 시간계획이 한 타임 늦춰져 버리고 말았다. 삶은 계란 싸온 거 하나 씩 먹고 음료수를 한 캔 씩 뽑아 먹었다. 주변에서 자전거포를 찾고자 한 번 쭈욱 돌아보다가 나중에 편의점 들어가서 물어보았더니 동네에 자전거포는 없고 멀리 나가야 한다고 하였다. 정말 어떻게 해야 할 지 아찔하기만 했다. 둘 째 날부터 이런 일이 험난한 사건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결국 우리가 내린 결론은 히치 하이킹이었다. 옆에 가게에서 쪼꼬바를 하나씩 사며 종이랑 매직을 빌렸다. 그리고 두껍고도 매우 큰 글씨로  ‘예산’, ‘도와주세요’ 라고 쓰고 삼거리에서 들고 서있었다. 이런 일이 처음이라 창피하기도 하고 덥고 잘 안 될 줄 알았다. 게다가 옆에 대학교가 있어서 거기 가는 여학생들도 있었고 다들 힐끔힐끔 쳐다봤다. 정말로 처음에는 차들이 잘 서지 않았고 서더라도 안 된다고 하였다. 그러다가 결국 상욱이는 용달차를 한 대 빌리러 갔고 우리는 계속해서 히치하이킹을 요구하며 길거리에 불쌍하게 서있었다. 그러다가 저쪽에 서있던 트럭 한 대가 우리를 향해 크락션을 한 번 ‘빠앙~’ 울리더니 엄지손가락으로 뒤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상욱이가 용달차를 한 대 얻어가지고 오기는 했는데 그 용달아저씨도 우리가 트럭을 한 대 잡는 모습을 보고 얼른 가라고 하셨덴다. 우우.. 이런 감사하고도 친절한 사람들.. 트럭이 우리 옆에 설 때의 환희란 잊을 수가 없다.

 

우리는 잽싸게 트럭 뒤에 자전거들을 실었다. 명섭이는 앞 자리에 타고 상욱이랑 나는 뒤 화물칸에 쭈그리고 앉았다. 어쩜 그렇게 트럭이 빠르고 편한지.. 문명의 힘이란 이렇게 사람을 편하게 하는가 라는 사실도 느꼈다. 우리 셋은 편하게 예산까지 공짜로 갈 수가 있었다. 아저씨는 너무 친절하신지라 우리를 예산에 데려다 주시는 것 뿐만 아니라 문을 연 자전거포를 찾아서 데려다 주셨다. 너무 고마우신 아저씨였다. 우리는 그 자전거포에서 세 대의 자전거를 모두 수리하였다. 상욱이 자전거는 기어 두 개가 모두 문제가 있었고 내 자전거는 앞 기어에만 문제가 있었다. 문제의 자전거인 명섭이 것은 튜브가 아예 작살이 나있었고 뒷 타이어는 마모되어서 마치 원래부터 플랫타이어인 것 같았다. 수리비는 우리의 보험이다! 라는 신념하에 비싼 돈 주고 뒷 타이어와 튜브를 아예 갈아버렸다. 다 합쳐서 수리비는 5만원으로 깍았고 그 아저씨께 대천해수욕장까지 가는 길을 알려달라고 하였다. 아저씨는 지도를 그려가며 친절하게 대천 해수욕장으로 가는 매우 좋은 자전거도로도 알아내었다. 또한 우리가 점심으로 김밥을 사려는 분식집 아줌마와 자전거포 아저씨가 아는 사이라서 수박을 공짜로 얻어먹는 행운도 얻었다. 김밥도 1500원에 한 줄. 맛있는 즉석김밥이었고 수박도 참 달고 맛있었다. 배불리 먹고 편하게 쉰 뒤 우리는 다시 자전거를 달렸다. 예산에서 가는 국도가 아닌 새로 알아낸 지방도를 따라서.. 아침의 우리의 계획과는 완전히,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의 시작이었다.

 

우리가 알아낸 지방도로는 예당저수지를 끼고 돌게 되어있었다. 고개가 약간 있어서 힘들기는 했지만 별로 힘든 길은 아니었다. 가던 길에 저수지 밑에 백로도 굉장히 많고 고기도 많아서 장난이나 치고 가기로 하였다. 조그만 물통으로 어항을 쳐보기도 했는데 실제로 물고기가 잡혀서 다들 즐거워 하기도 하였다. 좀 쉬면서 낚시를 하러 온 어떤 사람과 잠시 얘기도 하였다. 그리고 다시 우리는 언덕길을 넘어서 예당저수지에 있는 휴게소를 향했다. 언덕이 아니라 거의 야산에 가까웠다. 힘들게 오르막을 자전거를 끌고 올라가서 아이스크림 하나 씩 먹고 우리가 사온 김밥이랑 과일을 까먹었다. 원래 더운 시간에 자전거타기를 피하기로 했던 우리는 근처에 있던 등나무 밑 벤치에서 한 숨 자기로 하였다. 한 한 시간쯤 잤을까.. 더워서 잘 자지도 못한 우리는 그냥 어디든 가기로 하였다. 힘들게 올라온 오르막 다음에 이어지는 길고 긴 내리막을 타는 것은 너무나도 즐거운 시간이다.

 

그리고 끝없이 이어지는 평지.. 그늘이 없어서 힘들기도 했지만 아예 오르막이 전혀 없는 평지를 끊임없이 밟는다는 것은 지치기보다는 지루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겨우 30분 달려서 2시쯤 되었을까.. 햇살도 너무 뜨겁고 해서 하는 수 없이 근처 마을의 느티나무 아래에서 쉬었다. 평상도 있어서 거기 누워서 시원한 바람으로 더위에 익어버린 몸을 좀 식혔다. 가위바위보를 해서 진 명섭이가 컵라면도 사와서 잠시의 허기를 때웠다. 한 1시간 30분쯤 쉬면서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와 약간의 담소도 나누었다. 라디오도 틀어놓았는데 신나는 댄스곡도 나왔고 에미넴의 without me도 나왔다. 젖은 옷도 좀 바싹 말리고 그늘에서 푹 쉬었다. 대천까지 가려면 얼마나 가야하냐고 할아버지께 물으니 아마 어디가서 물어도 ‘한 10리 남았어’ 이렇게 말하니 아예 묻지 않는게 좋을거라 하셨다. 많이 갔다 싶어서 거기서 물으면 또 ‘한 10리 가야해’ 이런 다는 것이셨다. 그 말이 여행 내내 중요한 말로 떠 오른다. 이름하야 ‘10리의 저주’

 

 우리는 대천 해수욕장에 도착해서 서쪽바다로 떨어지는 해가 보고 싶었기에 열심히 자전거를 밟기로 하고 4시쯤이 되어서 다시 자전거에 올라탔다. 역시 끊임없이 이어지는 평지뿐이었다. 경치는 깨끗하고 길도 잘 닦여서 그냥 자전거 타기는 좋았다. 하지만 아무리 달려도 앞에 보이는 것은 나지막한 산이요 구불구불한 도로, 옆에는 아직은 새파란 벼. 쳇바퀴를 돌리고 있는 다람쥐의 심정이었다. 한 시간 넘게 달리니 지방도가 끝나고 드디어 국도가 나타났다. 국도 곁에 나있는 인도바닥에 앉아 아까 사둔 과자부스러기나 주워먹으며 조금 더 쉰 뒤 다시 대천 해수욕장을 향해서 정신없이 달렸다. 이정표에 나오는 대천 해수욕장은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이 보였지만 달리고 또 달려도 이정표는 대천 해수욕장이라는 글씨만 보여줬다. 느티나무 아래서 할아버지가 말한 ‘10리의 저주’가 생각났다. 지겹게 달렸다. 그러던 중 이번에는 내 자전거에 펑크가 났다. 이번에는 못이 박힌 것이 아니라 날카로운 플라스틱 조각이 박혔는데 갑자기 푸쉬이~ 하는 소리가 나더니 타이어가 찢어져버렸다. 힘들게 펑크패치를 5개는 붙여가며 겨우 땜질에 성공했다. 거의 다 도착했을 무렵 해는 거의 떨어졌고 낙조를 구경하기는 힘들 것 만 같았다. 근처 가게에서 햇반국밥을 세 개 구입한 후 또 다시 달렸다. 이윽고 대천해수욕장으로 진입하는 도로가 나왔고 아직 해는 떨어지지 않았다. 마지막 스퍼트를 냈다. 힘차게 달려서 우리는 결국 서해바다에 젖어드는 붉은 해를 볼 수 있었다. 푹신한 모랫바닥이 우리에게 침대를 제공할 것이다.

 

우리는 그러한 자연의 침대 위에 비닐을 깔고 우리의 첫 야영을 준비하였다. 끊임없이 달려드는 모기의 방해공작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까 사온 햇반국밥을 뜨끈하게 데워먹었다. 선선하고 짭짜름한 바다공기를 맞으며 뜨끈뜨끈한 국물을 후루룩 마시는 그 기분이란 색다른 포근한 아찔함이랄까. 굉장히 미묘한 감정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그리고 철썩철썩 소리만 들리는 새까만 밤바다를 바라보며 커피를 한잔 씩 마셨다. 오늘도 소주를 두 병 준비하였다.. 소금기 머금은 밤바다의 공기를 깊게 들이 마시며, 소주 한 잔과 파도소리를 삼았다. 알코올은 기분좋게 우리 핏줄을 타고 슬며시 우리 몸 속으로 스며들었다. 우리는 오늘 있었던 많은 일들을 즐거워하며 내일을 기대하였다. 이튿 날의 힘든 여정에 대한 대가치고는 굉장히 아름답고 운치있는 밤이었다. 하지만 어제 모기들의 습격을 잘 피할 수는 있었지만 어제 물릴 것 까지 합쳐서 이 날 밤 엄청난 모기의 습격을 받고야 말았다.

 

 

l       2002년 8월 21일 (대천 해수욕장 ~ 군산)

 

대천 해수욕장에서의 밤은 좀 추웠다. 상욱이랑 이불을 가지고 잠결에 다툰 모양인데 상욱이는 내게 이불을 뺏겨 쪼그리고 잤다고 했다. 아침에 난 먼저 일어나서 상욱이한테 이불을 줘버리고 먼저 세수를 좀 하고 손도 씻었다. 잘 자기는 했어도 추운 데서 야영을 한지라 몸이 뻐근하였다. 산책이나 좀 할 겸해서 혼자 바닷가를 거닐었다. 돌아다니다가 주위에 있던 바위 틈에서 게도 잡고 불가사리도 잡고 장난을 좀 쳤다. 돌아와서 애들을 깨운 뒤 다들 초코파이와 커피를 마시며 아침 허기를 좀 달랬다. 오늘은 대천에서 좀 놀다가 낮에 달리려는 계획이었으므로 바다에 다리도 좀 담궈 보고 수 많은 물고기도 좀 잡아보려고 안간힘을 썼다. 원래 바닥에 자세히 보면 큰 물고기도 있었는데 그런 놈들은 잡기 매우 힘들고 그냥 떼지어 몰려다니는 쪼그만 놈들이나 잡으려고 돌을 쌓아 물길을 막아도 보고 어디서 그물망을 가져와서 이용도 해보았고 지난 날 어항을 쳤던 것처럼 시도를 해보았는데 한 마리도 잡지 못한 채 괜한 힘만 뺐다. 또 해수욕장에서 혼자서 오랜 시간 거닐던 어떤 여자애를 보며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우리는 적당히 놀았기에 출발을 하기로 결정하였다. 원래 태양이 작렬하는 시간을 피하여 느지막이 까지 놀려고 하였는데 남자 셋이 놀라니 재미도 없고 시간도 잘 안가서 그냥 얼른 텐트를 걷고 우유 한 잔씩 마시고 출발을 하였다. 오늘의 목적지는 군산. 하루 일정으로 긴 거리는 아니지만 슬슬 피로가 쌓여가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출발부터 오르막이 좀 심했던지라 다들 힘들어하기 시작했다. 먹은 것은 초코파이 세 개랑 우유, 커피 한 잔. 1시까지 열심히 달렸는데 힘들어서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우리는 근처의 민가에서 밥을 얻어먹어 볼까 심하게 고민을 하다가 아직은 거지 같은 모습이 아니라서 다음에 하기로 하고 좀 더 달리기로 했다.

 

그 다음에 발견한 것은 고기부페! 우리같이 굶주리고 돈없는 양민들을 위한 식당이었다. 살짝 고민을 하다가 오늘은 고기를 뽀지게 먹고 힘내자는 의견에 만장일치. 7000원씩 내고 다섯 접시를 가져다 먹었다. 정신없이 구워먹고 마지막에 아이스크림까지 먹었다. 수정과도 세 그릇씩 먹고 진짜 다들 미친 듯이 먹어댔다. 여태 가본 고기부페 중에 상당히 괜찮은 편인 식당이었는데 참으로 운 좋게 우리에게 걸려들었던 것이다. 다들 과식한 탓에 화장실에서 볼 일도 크게 봤다. 두 시간 여에 가까운 식사시간을 마치고 이제 진짜 군산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배가 불러서 진짜로 그런지 아니면 우리는 고기를 먹었다는 의식때문인지 길고 긴 오르막도 헉헉 거리기만 할 뿐 내리지 않고 끝까지 다 올라갔다. 사실 이 때부터 평지는 거의 안 나오고 오르막 아니면 내리막. 이런 식이었다.

 

 오르막을 힘들게 올라가던 중 우리는 봤다. 우리는 봐버리고 말았다. 수박밭을 봐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우리는 그냥 지나쳐 버릴 수 없었다. 주인이 수박을 다 걷은 것 같기는 했지만 우리는 구석탱이로 쪼그리고 들어가서 그늘에 있던 수박 하나를 건드렸다. 명섭이가 주먹으로 수박을 내리쳐봤다. 썩었거나 질이 안 좋을 것이라는 우리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수박의 시뻘건 빛은 우리를 눈부시게 했다. 나는 아직도 그 때 명섭이의 놀란 눈을 잊을 수 없다. 우리 셋은 수박 두 개를 들고 언덕을 후다닥 넘어갔다. 시골 고유의 퇴비냄새가 나는 오르막에서 우리는 수박을 마져 뽀겠다. 그리고 각자의 도구를 이용하여 수박을 퍼먹기 시작했다. 아.. 그늘에 있던 수박은 달 뿐만 아니라 시원하기 까지 했다. 고기부페에서 고기를 엄청 먹고, 진짜 제대로 된 후식을 했다고 할까.. 우리에게 뽀림을 당한 수박 두 개는 충분한 수분과 당분을 제공했다. 더욱 힘을 낼 수 있다.

 

 가던 길에 맞은 편에서 다른 자전거 팀이 올라오고 있었다. 두 명이던 그팀은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었고 간단한 얘기를 좀 나누고 사진을 찍자고 하였다. 우리도 같이 사진을 한 방 찍었다. 그 사람들 중 하나는 16박 째였고 한 사람은 7박째 여행을 하고 있었다. 중간에 합친 모양인데 둘 다 오랜 여행 치고는 깔끔하게 여행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 사람들은 이런 여행을 몇 번 해본 모양인데 우리를 보고 여태 본 몇 십 개의 팀 중 가장 준비가 확실한 팀이라고 칭찬해서 기분이 좋았었다. 그 팀과는 기약 없는 이별을 하고 우리는 갈 길을 향해 떠나기 시작했다. 갈래 길에서 국도를 탈까 지방도를 탈까 고민하다가 갈래 길에 나온 국도가 오르막이었던지라 순간의 고통을 피하기 위해 우리는 지방도를 택했다.

 

우리의 선택은 정확했다. 그다지 힘든 길은 없었고 경치는 굉장히 아름다웠다. 해가 저물어가는 것을 보며 달리는 것은 굉장히 기분 좋은 일이다. 정말 하이킹 할 기분나는 도로였다. 가다가 중간에 보이던 갈포해수욕장의 갯벌에서 조금 놀기로 했다. 갯벌을 찾아가는 길을 잘 못들었다가 상욱이가 넘어져서 손 등을 다치고 자전거는 논 도랑에 빠질 뻔 했다. 다행히 상처는 경미했지만 손등의 상처라 앞으로 고생 좀 하겠다 싶었다. 살짝 치료를 하고 마을 속으로 들어가서야 갯벌에 도달 할 수 있었다. 넓게 펼쳐진 갯벌은 그간 봐온 백사장 바다와는 정말 다른 아름다운 분위기를 연출하였다. 갯벌이 처음인 우리의 명섭이는 갯벌 속에 들어가서 한 시간이나 놀아버렸다. 상욱이랑 나는 밖에서 좀 쉬면서 옆에 있던 서울 토박이였다는 택시기사 아저씨와 조금 얘기도 했다.

 

명섭이는 해가 질 무렵이 되어서야 갯벌에서 나왔다. 우리는 장항을 지나서 군산에 가야한다. 그러므로 지금 지나던 지방도를 힘차게 밟아서 장항까지 먼저 도달해야했다. 해가 저물었으므로 우리는 야간행군을 각오하며 장항까지 밟았다. 여기서부터는 다시 오르막과 내리막이 이어졌지만 조금이라도 빨리 군산에 도달하고자 힘차게 자전거를 밟았다. 해가 다 저물었을 무렵 우리는 장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장항에 도착한 우리는 조금 휴식을 취하며 첫 야간행군을 준비하였다. 준비해온 후미등을 작동시켰고 라이트를 켰다. 명섭이는 라이트가 없어서 중간에 포지션하고 상욱이랑 내가 앞뒤로 달렸다. 차가 듬성듬성 있어서 굉장히 위험했다. 달리는 속도도 무시무시했고 해가 저물기는 했지만 라이트를 안 켠 차들도 있었다. 우리는 조심조심 안전하게 길의 가장자리에 바싹 붙어서 달렸다.

 

이윽고 금강 하구둑 3km라는 이정표를 봤을 때 우리는 안도의 한 숨을 쉬었고 거기서 부터는 갓길도 널찍했다. 그래도 라이트가 많이 밝은 편이 아니라서 길 상태까지 체크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서행을 하였다. 이윽고 금강 하구둑에 자전거를 얹어놓을 수 있었는데 두 가지 사실에 우리는 놀랐다. 첫 째로 인간이 만든 장엄한 구조물에 놀랐고 하구둑을 건너며 바라본 아름다운 야경에 놀랐다. 힘들게 오르막을 넘어서 무릎이 아프기는 했지만 아름다운 야경에 흠뻑 취했다. 우리는 하구둑을 건너자 마자 바로 있던 공원에서 야영을 하기로 하였다. 이번에는 공원에서 야영을 한지라 불빛도 적었고 점심에 먹은 고기들이 다 소화가 안된지라 간단히 과자와 맥주만 한 캔씩 하기로 하였다. 조용하고 아름답게 세 번째 날의 밤이 저물어갔다. 그저 내일이 기다려지기만 하는 흥분되는 여행의 계속이었다.

by hoyarius | 2006/12/03 18:25 | Before | 트랙백

[2000] 여덟마리 짐승들의 바다여행기

 

 

여덟마리 짐승들의 바다여행기

 

 

 

등장인물

 

종아리짐승 : 심명섭군

등딱지짐승 : 신광호군

오리입을 가진 짐승 : 박진성군

검둥이짐승 : 양재원군

변태짐승 : 심재원군

돈많은 짐승 : 박택영군

불쌍한(?) 짐승 : 신상훈군

 

1편

 

여덟마리의 짐승들이 고속터미널에 모인 시간은 10시였다. 다들 제 시간에 맞춰나왔다. 음... 놀러가는데에는 관악타임이란 없던 모양이었다. 짐승들이 탈 차는 도착지 삼척에 출발시간은 11시였다. 모두들 들뜬 마음으로 각자 가방들을 어깨에 짊어지고 즐거운 여행이 되기를 바라며 버스의 계단에 한 발씩 올려놓기 시작했다. 한 여름의 태양은 이 삭막한 서울의 아스팔트를 뜨겁게 달구고 그 열기는 도시탈출에 대한 욕망을 더욱더 절실하게 했다. 그렇게 버스는 힘차게 출발을 하였고 그 때부터 우리의 여행은 시작하였다.

 

우리는 쉴새없이 떠들고 있어다. 뭐가 그리도 할 말들이 많았을까. 오늘 밤에는 뭘하자. 낼 아침부터 점심까지는 뭘하자. 이렇게 뭔가를 계속 입에서 뱉어내며 쉴새없이 떠드는 것이었다. 떠들다가 지친 어떤 짐승은 자기도 하고 여친이 있는 느끼한 짐승은 문자를 보내기도 하고 어떤 궁상맞은 짐승은 창밖을 내다보며 뭔가를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버스가 경기도를 지나고 강원도로 들어서니 굽이굽이 고개길이 나타났다. S자 운전을 완벽하게 하는 기사아자쒸는 다른 차들이 함부로 추월을 해도 전혀 부동심을 잃지 않는 아파테이아의 살아있는 모습이었다. 우리가 그가 이어폰을 낀줄 알고(사실은 핸즈프리였다.) 그를 놀려댈때도 그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 우리의 탄성을 자아냈다.

 

강원도의 자연풍경이란 인간의 인위적이고 가식적인 수식어따위로는 감히 표현할 수가 없는 모습들이었다. 등딱지짐승의 말을 빌리자면 선경이라는 한 단어가 정말 어울리는 것이었다. 맑은 계곡물을 감싸안고 있는 깍아지른 듯한 바위의 폭포!! 그것은 감히 졸속한 인간의 떼가 다가설수 없는 위엄을 자랑하고 있었다.

 

6시간이 지나서야 우리는 삼척터미널에서 내렸고 종아리짐승의 할부지댁에 가기위해서 다른 버스를 타야했다. 이 과정에서 2시간이나 허비하는 삽질을 거듭하기는 했지만 이미 우리는 피로에 익숙해져서 목적지로 가는 버스안에서도 검둥이짐승을 놀려대느라 정신이 없었다. 한 9시쯤 되었을까... 버스에서 내리고 나니 종아리짐승의 함무니가 여덟마리의 짐승들을 마중나오셨다. 그 짐승들은 로우휘시를 외치며 지칠대로 지친 몸들을 이끌고 초스피드 함무니를 따라가고 있었다. 하늘에서는 아름다운 별의 무리가 아름다운 강물을 그리며 짐승들에게 잠시나마 낭만의 늪에 빠지게 하였다.

 

식탁은 말그대로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였다. 오징어회와 삶은 문어 이면수 그리고 짱빨 맛있는 매운탕!! 이것은 진정 임금의 수라에 오를 정도의 저녁상이었으리라... 짐승들은 짐승답게 아무말도 않고 그저 음식에 혀를 날름거리면서 맛난 음식들을 끊임없이 집어대고 있었다. 수많은 파리떼와 함께한 저녁상은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황홀...T.T

 

우리는 밥을 마구마구 먹고나서 옥수수를 하나씩 입에 물고 근처에 있는 바다를 검색해보았다. 텐트들을 하나둘씩 지나서 모래사장이 보였고 그다음에는............. 검은 파도가 치는... 소금기가 묻은 입김을 불고 있는 바다가 우리를 맞이해주었다. 짐승들은 우와..... 라는 한 마디와 께 그저 바다를 경이로운 눈빛으로 쳐다볼 뿐이었다. 짐승들은 발싸개를 벗은뒤 바다에 더러운 발들을 담그었다. 바다는 그 더러운 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끊임없이 짐승들의 발에 파도를 던져주었다. 가끔은 커다란 파도로 바지를 적시기도 했으며 대부분은 간지러운 파도로 온갖 잡념들을 가져가버리고 말았다. 저멀리서 등대가 검은바다에 밝은 빛을 흩 뿌리고 있었다.

 

짐승들은 합의를 한뒤 겜방에 갔다. 임원이라는 시골에도 겜방은 있었다. 4:4... 정말 피튀기고도 화려한 겜들의 연속이었다. 물론 오리입을 가진 짐승이 속해있는 팀이 무조건 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막상막하의 겜이었기때문에 그들은 4시가 지났는지도 모르고 겜에만 열중하고 있어다. 그렇게 겜을 끝낸뒤 종아리짐승의 함무니집에서는 구수한 감자전과 시원한 수박쪼가리들이 짐승들의 배에 들어가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짐승들은 배불리 먹고 다음 날을 위한 잠시동안의 수면을 취하기 위해서 파리떼와 함께 눈을 감았다. 이미 그 때부터 다음날의 해는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희미한 빛으로 하늘 가득한 구름에 조금씩... 조금씩..... 발라 놓기 시작했다. 그 때까지 아무도 몰랐다. 다음 날 아침에 눈을 떠 하늘과 같은 모습들을 하게 될줄은....

 

 

2편

 

짐승들은 분명 뜨거운 태양의 햇살이 창문을 가로질러 들어와 자신들의 눈을 부시게 해주기를 바랬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의 눈을 뜨게 한 것은 습기찬 시원한 공기의 흐름!! 이것이 무엇이다냐... T.T 하늘이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짐승들도 덩달아 눈물을 흘렸다. 그들의 눈에는 어제의 뜨거운 태양이 마구 지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당장 그들앞에 펼쳐진 시골풍경은 이미 젖어있었는걸.. 우짠댜...

 

이번 동해로 떠나자 프로젝트의 실행자 종아리짐승은 어쩔줄 몰라하며 퍼질러 누워있었고 모든 짐승들도 할말을 잃은채 마냥 축쳐진 모습으로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이마짐승과 등딱지짐승은 잠시 임원해수욕장을 답사해보겠다면서 우산을 하나씩 들고 나갔다. 잠시 둘러본 해수욕장은 조금 좁고 쓰레기가 많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놀기에 좋았다. 물도 매우 맑았고 집에서 가까우니 이동도 편리했기 때문이다. 답사를 마친 이마짐승과 등딱지짐승은 다른 짐승들에게 비맞으면서라도 해수욕을 하자고 주장했다. 결국 그들은 아침밥을 먹고 그들이 고대하던 바다놀이를 가기로 결정했다.

 

아침역시 수라상이었다. 이면수와 어제 매운탕의 업그레이드 버젼.. 그리고 등딱지짐승과 종아리짐승의 눈을 뒤집어놓았다 등딱지게!!! 화려한 해물한마당을 실컷즐겼다 .그리고 모두들 들뜬 마음으로 수영복을 갈아입고 그들이 가져온 보트와 돗자리를 가지고 그리고 옥수수와 감자봉다리를 들고 활짝 웃으면서들 발걸음을 옮겼다. 여전히 비는 그들을 비웃기나 하듯이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지만 짐승들은 아랑곳하지않고 힘찬 발걸음을 디뎠다.

 

변태짐승의 수영복이 압권이었다. 거의 으뜸가리개수준의 수영복!! 스판 사각이었다. 다른이들은 경악을 금치못하였으며 변태짐승도 등딱지가 상당히 넓다는 것을 눈으로 감상하였다. 어쨌든 그들은 가는길에 탱탱볼과 비취볼을 하나씩사서 드디어 모래를 밟았다. 텐트가 없던지라 파라솔하나를 7000원 빌려서 해변근처에 떠어억 하니 꽂았다. 그리고는 바다로 달려들었다. 물이 처음에는 찼지만 그래도 온 몸을 감싸는 바다의 체취는 짐승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수구, 축구, 보트빼앗기, 조개잡기, 게잡기등 해수욕장에서 할 수 있는 모든 놀이들을 했다. 돈많은 짐승과 여러 짐승들은 비키니의 여성들을 검색해보았지만 없는 파일들이었다. 어쨌든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즐겁게 놀았다. 놀다가 너무 추운 나머지 1500원이나 하는 비싼 라면도 하나씩 사먹어줬다. 몸을 조금 데우고 나서 다시 한 번 바다로 뛰어들었다. 특히 발로 모래를 뒤진뒤 잠수해서 조개를 잡아내는 재미는 정말 쏠쏠했다. 종아리짐승은 어부의 다리라는 별명답게 많은 양의 조개를 잡아냈다. 또한 등딱지짐승은 큰 조개를 잡으면서 다른 이들에게 또다른 볼거리를 제공했다.

 

물은 정말 맑았다. 목까지 차는 곳까지 들어가고 발이 보일정도였으니 말이다. 동해라서 물이 금방 깊어져서 정말 위험하기는 했지만 오히려 멀리 나갈필요없이 재미가 있어서 괜찮았다. 수경을 쓰고 물바닥을 훝어보면 찾아볼 수 있는 물고기들, 바위틈에서 종아리짐승의 막대기와 싸우는 게들, 말미잘, 따개비, 홍합 곳곳에 즐거움이 가득했다. 한 4시간정도 놀았을까.. 아무리 짐승들이라도 찬 물속에서 비를 맞으며 노는 것에도 체력의 한계를 느낄 수 밖에 없었다. 불쌍한 짐승과 오리입을 가진 짐승이 가져온 마른 옷으로 잠시나마 추위를 피한후 하나하나 짐을 꾸렸다. 예상과는 다른 해수욕이었지만 나름대로의 즐거웠던 놀이였다. 그들은 많이 피곤했다.

 

한 명씩 샤워를 하고 나니 몸이 치즈가 되어버린듯 눕자마자 바닥에 녹기 시작했다. 한 3시간 쯤 잤을까... 짐승들은 허기를 느끼기 시작했다. 저녁은 그들의 계획대로 삼겹살을 먹기로 했다. 20000원 어치.. 그리고 밥 한그릇. 많은 양의 고기였다. 이것은 내가 굽던 고기 왜 굽지도 않고 초반 러쉬하냐니 티격태격하면서 허기진 배들을 조금씩 채워나갔다. 여전히 파리와 함께한 식사였지만 달콤한 고기의 맛은 잊을 수가 없다.

 

배를 채우니 다시 기운이 났다. 짐승들은 다시 집을 기어나와 폭죽놀이도 사고 겜방도 갔다. 겜방은 재미가 없어서 바로 나오기는 했지만 그래도 오리입을 가진 짐승이 전승을 거두었다는 것은 믿기 어려운 사실이었다. 기왕 바다에 왔으니 더 바다에 있자는 누군가의 의견에 동의한 모든 짐승들은 터벅터벅 걸으면서 점심때 신나게 놀았던 바다로 향했다.

 

맥주한캔씩.. 그리고 과자 몇 봉지.. 얼마간의 정적이 흘렀을까.. 말들이 없었다. 너무 피곤했던 탓일까.. 몇 마리의 짐승들이 해변가로 자리를 옮기더니 폭죽놀이를 했다. 비록 피리빵은 못했지만 다른 폭죽놀이로 무료함을 달랬다. 몇 마리들은 혼자서 밤바다를 즐겼다. 복식호흡을 하는 짐승.. 혼자서 바다를 바라보며 라면을 먹는 짐승.. 발을 움직이기 싫어서 테이블에 앉아있던 짐승.. 그래도 바다는 말이 없었다. 그 바다는 전날 밤에 보았던 바다와는 다른 바다였고 그날 점심때 놀았던 바다와는 다른 바다였다. 여러 사람들과 하루종일 놀아주고도 지치지 않았던 바다는 어김없이 밤에도 파도를 던져주었다. 가끔씩 들려오는 사람들의 노랫소리와 함께... 철썩이는 밤바다의 파도소리는 그 어느 무드없는 짐승이라도 감상에 빠지게 할만 한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각자 바다를 바라보며 무슨 생각들을 했을까. 끊임없이 펼쳐진 저 바다의 끝을 바라다 보면서 그들은 무슨 생각들을 했을까.. 그 바다의 끝에서 뭔가의 새로운 시작을 찾는 짐승도 있었을테고 지난날의 과거를 잠시 긁어보는 짐승들도 있었을테고 어쩌면 자연 그대로의 바다.. 이 인간들이 이 모래사장에 발을 딛기 이전의 바다를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밤바다는 각자의 생각을 머릿속에서 끄집어내면서 센티멘탈한 파도소리를 들려주고 있었다.

 

많이 피곤했던 탓일까. 모든 짐승들은 빨리 가서 자자는 의견에 동의 했다. 뭔가... 경황없이 지나간 동해에서의 두번째 밤... 아무 느낌없이 그들은 집에 가기위한 다음날을 맞이하기 위해 즐거웠던 하루 밤을 접어두고 8월 5일 아침을 예약해두었다.

 

 

3편

 

... 짐승들이 서울로 올라가는 날이다. 원래는 7시에 일어났어야 하지만 너무 늦게 잤기 때문에 9시쯤 일어나고 말았다. 종아리짐승의 할부지가 차려주신 아침상으로 아침을 활짝 열었다. 하지만 여전히 찌뿌린 하늘은 짐승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감자동그랑땡국과 이면수 이름모를 생선 여전히 식사는 화려했다.

 

다들 짐을 싸기 시작했다. 사실 재미있게들 놀았다고는 하지만 확실한 여름즐기기가 된것은 아니다. 종아리짐승이 열심히 추진하기는 했지만 날씨는 어쩔 수 없었던 것이다. 아쉬운 마음들을 각자의 마음에 담아두고 주섬주섬 옷들과 물건들을 챙겨넣기 시작했다. 그것이 이 자연속을 떠나는 첫 번째 행동이었다.

 

11시 시내버스를 타고 삼척으로 간후 동해에서 버스를 타야하는 것이 짐승들의 임무였다. 옥수수 봉다리와 가방들을 짊어지고 할부지의 배웅을 받으며 버스정류장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하늘이 이렇게 짖굳던 때가 또 있었던가... 가는 길에 우산도 없는데 비가 내리는 것이었다. 으이그.... 이제 왠만한 비를 맞는것은 두렵지가 않다. 아무 망설임없이 얼굴에 비를 묻혀가면서 정류장에 도착했다. 곧 짐승들을 실을 버스는 도착을 했다.

 

가는 길.... 1시간정도의 이동.. 굽이굽이 고개길을 지나면서 짐승들의 오른 쪽 윈도우를 장식한 광경은 눈물이 날 정도로 아름다운 바다의 모습이었다. 바다는 너무너무 맑아서 저 멀리의 바다위에 떠 있는 바위의 뿌리가 모래속에 파 묻힌 모습까지 보였다. 물은 말로만 듣던 투명한 에머랄드색. 해변에는 쏟아져 내릴 듯한 바위들.. 바다에는 솟아오를 듯한 바위들.. 저 멀리 보이는 구름은 또 다른 바다를 만들어내어 동해바다의 수평선과의 경계를 어지럽히고 있었다. 그런 구름바다사이로 드러낸 하늘색의 하늘은 보는 이들의 입을 벌려놓은채 아름다운 자태만을 드러낼 뿐이었다.

 

바다의 진한 소금기가 묻은 바람이 창가를 통해 허파속을 깨끗이 씻어주었다. 대관령의 화려한 계곡의 모습과는 달리 웅장하고도 거대한.. 그리고 어떤 순수함으로 장식된 동해바다의 미적세계는 왜 이리도 짐승들의 마음을 미친 듯이 쿵쾅대도록 만들었을까. 만약 내가 저 투명한 바다속에 사는 한 마리의 물고기였다면 어떤 행복함을 느끼고 있을까. 아니면 저 넓은 바다위에 날아다니는 한 마리의 작은 새였다면 어떤 행복함을 느끼고 있었을까.. 마냥 차창밖의 풍경은 황홀할 뿐이었다.

 

그런 행복함도 2시간뿐.. 짐승들은 서울로 가는 버스들이 모이는 종합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표는 5장 우등표, 3장 일반표가 있어다. 가위바위보로 우등을 타고 갈 사람을 뽑은뒤 점심을 해결하였다. 터미널에서 먹는 국밥의 맛이 매운 맛이었는지.. 싱거운 맛이었는지... 다들 뭔가의 허전함에 휩싸여 그저 가는 길에 고프지 않도록 각자의 위에 뭔가를 쑤셔 넣었다. 1시 50분.. 서울 행 우등버스가 도착을 했다. 미리 갈라놓은 5명의 패거리가 버스에 올랐다. 강원도 땅에서 발을 떼는 순간이었다.

 

버스는 힘차게 엔진에 기름을 넣고 피스톤을 움직이고 있었겠지만 짐승들은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 긴 시간동안 그들은 버스에 몸을 실은채 강원도를 빠져나오고.... 그들의 둥지인 서울에 발을 내려놓았다. 이것이 여덟마리 짐승들의 바다여행기의 끝이었다.. 

 

 

 

 

p.s. 벌써 6년도 넘은 이야기.

by hoyarius | 2006/12/03 18:24 | Before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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