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국토종단 제 4부
Into the Island
l 2002년 8월 26일 (완도 ~ 제주 항 ~ 중문)
오늘은 분명 6시 30분에 일어나야 한다. 제주도로 떠나는 배가 8시에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자려고 했던 수면실을 취한 다른 팀 녀석들의 천둥 코골기 비기에 휘말리지 않았던 난 숙면을 취할 수 있었다. 자전거 여행을 하며 내공을 쌓았더니 이제 왠만한 곳에서도 잠은 잘 잘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이번에는 코도 막히지 않고 아주 잘 잤다. 상욱이의 핸폰 진동으로 깬 나와 상욱이는 먼저 샤워를 하고 명섭이를 깨웠다. 명섭이도 오늘 일찍 일어나야하는 것을 아는지 벌떡 일어난다. 우리는 금방 떠날 준비를 마친다. 찜질방 아줌마한테 제대로 인사도 못하고 금방 완도항을 향해 떠난다. 근처 마트에서 연양갱과 오예스랑 음료수를 준비한 우리는 8시 발 배 표를 끊는데 무난히 성공한다.
배에 올라탄 우리는 짐삯 4000(1000원 깍아서..)원 씩 내고 바깥의 좌석에 자리를 잡는다. 출발은 8시. 배가 ‘뿌우우우~’ 소리를 내자 드디어 제주도를 향하는구나.. 라는 느낌이 팍팍 오른다. 배가 출발하자마자 우리는 사온 간식들을 마구마구 뜯어먹었다. 원래 오후 3시 발 배는 3시간 30분 걸려서 제주도에 도착하는데 우리가 탄 배는 추자도를 거쳐서 제주도에 가는 것이므로 5시간이 걸렸다. 아무리 우리가 무한체력이라지만 잠들지 않고 5시간씩이나 배에 짱박혀 있을 수는 없는 법. 명섭이는 어디서든 잘 자므로 매연이 콸콸 쏟아지는 바깥자리에서도 잘 잤지만 상욱이랑 나는 2등석 자리 빈 곳에서 달콤한 잠을 청한다. 한 시간쯤 자고 우리는 셋이 모여서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수다를 실컷 떤다. 지루하게 갔다 싶으면 추자도에 도착했고 지겹다 싶어서 한 숨을 청하면 아직도 푸른 바다 위를 달리고 있었다. 이제 우리가 보내야 할 시간을 거의 다 보냈을 무렵 배의 앞머리에서 제주도 땅덩어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가 탄 배는 제주항에 1시경에 도착했다. 오늘의 잠자리는 아마 중문관광단지에 있는 어떤 콘도로 정해질 것 같았다. 그런데 제주에서 중문이라면 짧은 거리가 아니었다. 게다가 우리 출발시간이 오후인지라 만만한 도전이 아닐 수 없었다. 일단은 제주시를 빠져나가는 것이 첫 째 과제. 제주시를 빠져나가는 길목에서 제주산 한라우유 하나 먹어주고 열심히 달렸다. 그런데 며 칠 전부터 햇볓이 심하게 내리쬐었던 지라 오후 주행은 굉장히 힘들고 괴로웠다. 그래서 우리는 중간에 나오는 해수욕장에서 해수욕이나 하면서 좀 쉬기로 하였다. 어차피 해수욕장은 해변가에 있는지라 국도를 타기보다는 해변도로를 타기로 결정하였다. 이것은 어쩌면 사소한 실수였을 지도 모른다.
해변도로는 꽤나 힘든 코스였다. 길이 쭉쭉 뻗은 것이 아니라 꼬불꼬불 오르내리막이 장난이 아니었던 것이다. 게다가 더 참기 힘든 것은 맏바람이었다. 고생끝에 어떤 여자 두 명의 하이킹 족을 제껴버리고 곽지해수욕장에 도착한다. 곽지해수욕장.. 바로 옆에 있던 협제해수욕장보다는 많이 알려진 편은 아니지만 우리가 쉬면서 해수욕하기에는 아주 적당한 곳이었다. 자전거는 대충대충 묶었다. 어차피 이제 제주도에 도착했으니 도둑들아! 가져갈테면 가져가라~ 라는 심산이었다. 우리는 대충 속 옷을 벗고 바지만 입은 체로 바다 속으로 뛰어 들었다. 곽지 해수욕장이 좋은 점이 어떤 곳은 마치 물이 얕으면서 정말 깨끗했고 수영장처럼 현무암으로 쫘악 둘러싸여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중간중간에 잘 살펴보면 모래가 버섯처럼 솓아 있는 곳이 있는데 그 곳이 한국지리 시간에만 배웠던 용천대! 였던 것이다. 그 곳에서 솟아나는 물은 정말 얼음장처럼 차가웠는데 거기다 발을 대 놓고 있으면 밑도 끝도 없이 발이 빠져들어갔다.
하지만 우리는 좀 더 깊은 곳을 원했으므로 사람이 별로 없던 옆 자리로 가서 시원하게 해수욕을 했다. 우리 앞 쪽 좀 얕은 곳에서 이쁜 여자 하나를 끼고 온 패밀리가 있어서 부러운 눈길로 쳐다보기는 했으나 개의치 않고 열심히 더위를 피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맑고 차가운 바닷물은 오후 햇살을 피하는데 최고로 좋은 휴식처를 제공하였다. 우리는 한 시간 정도 곽지해수욕장에서 즐거운 해수욕을 즐긴다. 해수욕장에서 야영은 많이 했어도 해수욕을 제대로 즐긴 것은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된다. 신나게 더위를 식힌 우리는 수돗가에서 소금기에 젖은 몸뚱이를 씻어내고 사람들이 없는 편을 향해 서서 바지를 펄럭이며 몸을 말린다. 모양새는 상당히 추했지만 우리는 서로의 모습을 보며 웃어대며 열심히 XXXX부분을 잘 말렸다. 그 다음 다시 주행모드로 변신. 우리가 가야 할 중문단지를 향해 열심히 달리기 시작한다.
한림쯤 가는데 자전거 팀 하나를 또 제친다. 여기서부터 루트에 대한 상당한 고민이 시작된다. 한 쪽 길은 평지에 엄청난 맞바람. 다른 쪽 길은 한라산 자락을 넘어 가는 것. 이렇게 비교가 상당히 힘든 고민을 놓고 우리는 엄청난 갈등을 하게 된다. 하지만 달려본 결과 해변도로가 쉬운 것도 아니고 끊임없이 부는 맞바람은 참을 수 없이 허벅지를 단단하게 만든다는 사실에 주목. 시간도 줄일 겸 한라산 루트를 통해 중문으로 가기로 결정한다. 과연 잘 한 결정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결과로 봐서는 성공임에 틀림없다. 한라산을 통해 중문으로 가는 것은 엄청난 고난이었음은 확실하다. 왜냐하면 그렇게 많은 하이킹족을 우리 쪽 루트에서는 단 한 팀도 발견을 못했기 때문이다. 적어도 이 사실 하나 만으로도 우리는 굉장한 일을 해냈음은 분명하다. 우리 팀은 끊임없이 나오는 오르막에 욕을 나불나불 거리면서 제주도를 점점 갈라나가기 시작한다. 어떤 가게에 들러서 물어봤더니 3km짜리 언덕도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정말 다리가 휘청했었다. 말만 듣고도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누구인가. 그간 반도에서 엄청난 훈련을 쌓아온 팀이 아닌가. 우리의 엄청난 페달질은 곧 자전거를 한라산 중턱 위에 올려놓는데 성공한다. 그 이후 나온 7km짜리 연속 내리막은 입이 귓가까지 벌어질 정도로 우리를 행복하게 웃도록 만들어준다. 말이 7km이지 사실 자전거를 타고 달리려면 끔찍한 거리다. 하지만 시원시원 뻗은 내리막은 7km라는 거리를 단지 5분 만에 우리를 중문관광단지 앞까지 인도하였다. 거기서부터 한국콘도를 물어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오늘 열심히 콘도까지 달린 이유는 단 한가지였다. 그것은 바로 회! 회가 바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명섭이네 아버지께서 부쳐주신 돈으로 오늘은 진수성찬의 저녁을 기대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킹마트인지에 도착해서 참돔이랑 광어를 1kg씩 사고 오겹살을 1kg샀다. 그리고 아침에 먹을 먹거리 조금이랑 술 몇 병을 사들고 한국콘도를 찾아갔다. 한국콘도 내에서 숙소를 잡는데 사소한 어려움이 있었지만 우리는 더 좋은 빌라를 얻어 그 쪽으로 향하게 된다. 우리가 도착한 빌라는 34평형으로 지친 몸을 편하게 쉬기에는 넓고도 넓은 대지였던 것이다.
우리는 취한 상욱이가 쏜 시바스리갈까지 먹어가며 맛난 안주와 화려한 술메뉴로 제주에서의 첫 밤을 장식한다. 솔직히 나는 국토종단에 대한 보상으로 좀 즐기며 놀 수 있는 관광 및 여행을 기대하였으나 오후의 산타기 질주에 굉장히 고달펐었다. 하지만 밤에 벌어진 우리의 광란 잔치는 기대했던 대로 우리를 뜨끈한 후라이팬에 얹은 치즈처럼 단 번에 녹여버렸다. 10박 여행 내내의 가장 행복하고 가장 사치스러웠던 밤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사치스러운 밤은 차라리 없었던게 이후 이틀을 심리적으로 편하게 만들었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니..
l 2002년 8월 27일 (중문 ~ 중문 해수욕장)
어제 밤늦게 술 마시고 놀았던 지라 아침에도 약간 술기운이 남아있었다. 오늘의 일정은 바다낚시 하나 밖에 없었다. 오늘은 하루 종일 낚시나 하면서 놀기로 했던 것이다. 우리는 제주도에 도착하기 전부터 낚시이야기를 많이 했었다. 어제는 회를 먹으면서 아.. 내일도 회를 또 먹어야 하는가.. 하면서 우스개 소리도 했었다. 얼마나 많은 고기를 잡을 수 있을까.. 어쨌든 이 방은 얼른 비워야 했으므로 다들 따뜻한 물로 샤워도 하고 방 정리를 좀 한 뒤 가방을 다 쌌다. 어제 제주도 동 쪽에는 비가 왔었다는데 오늘도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어서 비옷은 가방 안에 넣지는 않았다. 다 챙기고 나와서 경비실 같은 곳에 가방을 맡겨두고 자전거 짐받이에는 코펠과 버너만 달랑 매단 채 낚싯대 대여점을 찾아 나선다.
낚시가게는 우리가 머물었던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아저씨한테 간단한 설명만 조금 듣고 한 길다란 낚싯대를 한 손에 들고 한 손으로는 핸들을 잡고 자전거를 조심조심 몰았다. 방파제 위에서 낚시를 하는 것인데 너무 흥분되고 기대되었다. 특히 나는 낚시를 하고 싶었지만 그 동안 낚시라는 것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이 너무 긴장되고 흥분되었던 것이다. 방파제에 도착하기 전에 가게에 들러서 빅파이랑 음료수 한 통 이랑 과자 몇 개를 준비했다. 그리고 빨간 등대가 우두커니 서있는 방파제에 도착하였다. 자전거는 대충 세워놓고 각자 낚싯대를 셋팅하기 시작했다. 낚싯대를 길게 늘어뜨리고 줄을 일 자로 만든 다음 꿈틀거리는 징그러운 갯지렁이를 바늘에 꾸역꾸역 밀어넣었다. 이 순간은 참 역겨운 순간이다.
꽤나 파도가 높게 일었지만 하늘은 맑았고 태양이 몹시도 뜨거웠다. 추울까봐 준비했던 긴 팔 옷과 비 올까봐 준비했던 비옷은 그저 짐 만 되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 기대되고 흥분되었던 지라 더운 날씨에 투덜거리면서도 면장갑을 끼고 갯지렁이를 힘들게 바늘에 밀어넣었다. 나는 바다낚시가 처음이라 낚싯줄을 멀리 던지는 방법을 몰라 애를 좀 먹었지만 금새 배우게 된다. 그런데 이상하게 내 낚싯대만 줄이 자꾸 엉키고 나중에는 릴 속까지 줄이 엉켜버려서 혼자 나는 북북 거리면서 성질을 낸다. 또 너무 덥고 그래서 짜증만 나서 나는 이내 지쳐버렸다. 하지만 명섭이랑 상욱이는 고기들의 입질이 재미있기는 한지 열심히 낚싯줄을 늘어뜨리고
마냥 파도치는 바닷속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한 시간쯤 입질을 느끼던 순간 상욱이가 첫 물고기를 낚았다. 너무 놀라고 신기했다. 우리가 기대했던 큰 물고기가 아니라서 좀 실망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낚시바늘에 걸려서 퍼덕거리는 물고기를 보며 너무 즐거워했다. 고기들이 얍삽하게 바늘은 안 물고 미끼만 살짝살짝 뜯어먹다가도 이렇게 멍청한 아해들은 바늘을 덥썩 물어버리는 것이었다. 우리는 희망을 갖기 시작했다. 낚싯줄에 엉켜버린 내 낚싯대는 뒤에 팽개쳐두고 우리는 두 개의 낚싯대만을 운영하며 고기낚기에 힘썼다. 나도 상욱이의 낚싯대를 이용하여 능숙하게 갯지렁이도 끼우고 멀리다가 낚싯줄을 던질 줄도 알아가는 순간..
나는 낚싯대의 손잡이 부분이 자꾸 툭툭 당겨지는 것을 느꼈다. 심상치않다 싶어서 릴을 재빨리 돌리는 순간 수면에는 은색으로 번쩍거리는 물고기가 잡혀 올라온 것이다. 상욱이랑 같은 종류의 물고기였다. 나의 첫 어획이었던 것이다. 너무 즐거웠다. 한 마리 잡는데 거의 한 시간씩 걸리는 지라 지칠 때쯤 되니 한 마리씩 올라오느라 포기를 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명섭이는 바다낚시 유경험자였으므로 한 마리도 낚지 못한데 대해 쪽팔림을 느끼고 있어서 명섭이는 더욱더 열심히 낚싯대를 붙잡고 있었다. 사실 우리의 뒷 편에는 낚시하기 굉장히 좋은 장소가 있었지만 거기는 베테랑들이 아까부터 자리를 고수하고 안나왔던지라 우리는 계속 힘들게 방파제 위에서 낚시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상욱이도 곧 탈진. 아까부터 낚싯대를 붙들지 않는 상욱이는 지친 나머지 건물 구석의 그늘에 누워서 자기도 하고 절벽의 그늘에서 자기도 하였다. 명섭이랑 나도 지쳐버리고 말았다. 아까 내가 물고기를 한 마리 낚은 것 말고는 한 마리도 잡히지 않았기 때문에 더 힘들었다. 결국 우리는 머리 위에서 불길을 뿜어대는 태양을 피해 절벽 쪽 그늘로 피해간다. 일기예보에서는 비가 온다고 하더니만 제주도의 하늘은 정 반대로 맑고도 맑음을 자랑했다. 한 시간 정도 쉬었다가 나랑 명섭이는 낚시를 계속했다. 아까 좋은 자리에서 낚시 하던 베테랑 아저씨들에게 떡밥도 좀 얻어서 해보기는 했으나 나는 이미 의욕을 상실한 상태였다. 하지만 명섭이는 다른 포인트에서 열심히 낚시질을 한 결과 우리와는 다른 종류의 물고기를 한 마리 낚았다. 명섭이는 물고기가 바늘을 무는 것을 기다리지 않고 물고기 때가 바늘 쪽에 있을 때 낚싯대를 확 당겨서 바늘이 물고기에 걸리게 했던 것이다. 불쌍한 물고기는 무식한 명섭이의 낚시질에 의하여 머리를 관통 당하고 곧 숨진다. 하지만 우리의 명섭이는 천진한 표정으로 매우 즐거워한다.
결국 4시간 동안 우리 셋이 잡은 물고기의 양. 세 마리. 한 마리도 먹지 못하고 그냥 놔주게 된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상욱이랑 내가 잡은 물고기는 ‘학꽁치’ 라는 놈으로 회를 떠먹으면 굉장히 맛있는 놈이라고 한다. 어쨌든 우리의 첫 바다낚시는 힘들고 괴롭기만 하였고 별다른 소득 없이 끝나고 만다. 낚싯대를 다시 돌려주고 우리는 맡겨두었던 짐을 찾았다. 오후 내내 군것질만 했던 우리는 너무 배가 고팠고 또 시원한 게 먹고 싶었다. 그래서 중국집에서 콩국수 한 그릇씩 먹고 잡채밥을 하나 시켜먹었다. 시원하게 콩국수를 먹고 나니 더위를 먹었던게 좀 가시는 것 같았다. 오늘의 야영지를 또 찾아야 되는데 오늘 너무 피곤했던 지라 근처에 있는 중문 해수욕장에서 야영을 하기로 한다. 중문 해수욕장을 찾아가는데도 고생을 좀 한다. 많이 어두워져서야 중문 해수욕장을 발견했는데 텐트를 거의 다 쳤을 무렵 방송에서 모래사장에서는 야영이 불가능하다고 말을 한다. 우리는 괴로워하며 그냥 우리가 펼치다 만 텐트 위에 털썩 누워버리고 만다. 여기서 좀 쉬다가 위에 주차장 옆에 있는 야영지에 올라가자고 하고 음료수 하나 씩 마시면서 오늘의 피로를 풀어 보려 한다. 여기서 제주일주 중인 모터보드 팀도 같이 만나서 이야기를 좀 한다. 그 팀은 광주에서 출발했는데 이러한 자전거나 모터보드 같은 레포츠에는 아주 빠삭한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그 사람들이 쏘는 맥주 두 캔씩을 마시며 그런 전문적인 지식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좀 듣는다. 나는 솔직히 남자들 팀이라 별로 같이 놀고 싶은 생각은 없었지만 그래도 대화의 화제에 관심이 많아서 여러 가지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나중에 야영지에 올라가서는 자전거 기술도 몇 가지 배우게 된다. 자전거 묘기를 몇 개 배운 것 말고는 그리 즐거운 시간은 아니었다. 너무 피곤해서 그랬던 것일까..
우리는 야영지에 텐트를 치고 잘 준비를 한다. 내일은 또 다시 자전거를 달려서 성산까지 가야 한다. 내일과 내일 모레만 열심히 달리면 이제 우리의 자전거 여행도 매듭을 짓게 된다. 바다낚시의 날. 아쉬움만으로 끝을 맺은 채 제주도에서의 두 번째 밤을 맞이한다.
l 2002년 8월 28일 (중문 해수욕장 ~ 신양 해수욕장)
아침부터 소나기가 쏟아졌다. 주행 중에 비가 오는 것은 별 상관이 안 되는데 시작하기 전에 비가 오면 준비에도 많은 차질이 생기고 굉장히 피곤한 일이다. 덕분에 출발시간이 좀 늦어졌다. 사실 오늘 달려야 할 거리는 별로 안되지만 일찍 출발하려고 했던 이유는 남쪽나라 제주도의 뜨거운 태양을 피하려고 했었던 것이다. 하지만 소나기가 우리의 의도를 저지하고 말았다. 소나기가 그치고 나타난 태양은 무시무시했다. 아침부터의 더위는 숨을 턱까지 차오르게 만들었다. 뜨거운 태양은 젖은 옷 말리는 데는 일품이었지만 썩 고맙지는 않았다. 어제 만난 모터보드 팀이랑 부산에서 온 중학생 팀이랑 오늘 행동을 같이 하게 되었는데 그냥 중간지점이나 목적지만 같이 하였을 뿐 달리기는 각자 하기로 하였다. 출발은 우리가 제일 빨랐다. 중간에 있던 매점에서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튀김우동(컵라면)과 김밥 두 줄로 아침을 때웠다. 그리고 얼린 물 두 통을 준비한 채 오전 주행을 시작한다. 예상대로 굉장히 더웠다. 하지만 심한 경사는 없었던 지라 별 무리없이 달렸다. 그리고 달릴 때는 오히려 바람이 시원하게 불기 때문에 흘린 땀이 증발하면서 시원함을 가져다 주었다. 그렇기에 땡볕에서 쉬는 것보다는 달리는 편이 더 좋았다. 우리는 천지연 폭포에 가서 낮 시간을 피하기로 결정하고 제주도의 남쪽 도로를 따라 달리기 시작한다.
지나가던 길에 있던 서귀포 월드컵 경기장에서 사진도 좀 찍고 쉬면서 관광 온 여자들을 구경한다. 거기 있던 사람들 중 우리를 보고 어디서부터 왔냐고 묻는다. 대부분 제주에서 자전거 족을 만나면 ‘몇일 되셨어요’라고 묻는데 우리한테는 ‘어디서부터 오셨어요’라고 묻는다. 우리의 꼴이 말이 아니기는 한가 보다. 그늘에서 좀 앉아서 쉬는 데 꽤 멋진 두 명의 여자를 발견하고는 서로 좋아하는 모습이란 참 지금 생각해보면 얼마나 궁상맞았는지 모르겠다. 말 걸 것도 아니고 사진 같이 찍자고 할 것도 아니면서 말이다. 어쨌든 우리의 서귀포 경기장에서의 휴식은 나름대로 영양가 있었던 휴식이었다. 다시 엉덩이를 털고 일어난 우리는 천지연 폭포를 향해 힘차게 페달을 밟았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천지연 폭포에 도달하였다. 그저께 산넘기 주행을 통해 많이 단련이 된 것일까. 정말 별 탈 없이 천지연 폭포에 도달하였다. 폭포로 내려가기 전에 있던 편의점에서 찬바람 맞으면서 또 컵라면으로 점심을 때웠다. 다 먹고 초코바 하나 씩 사먹고 천천히 에어컨 바람이나 맞으면서 푹 쉰다. 그리고 천지연 폭포를 향해 다시 자전거를 붙잡았다. 도착하고 보니 입장료를 받길래 우리는 일단 자전거를 묶어두고 잠시 쉬었다. 얼마 후에 모터보드 팀이랑 중등부 팀이 도착했다. 자연경치 구경하는데 돈 받는 다는 사실에 모두들 분개하였다. 우리 세 팀은 등나무 그늘에 앉아서 이미 폭포에서 떨어진 물들이 흘러가는 것만 하염없이 구경하였다. 우리를 제외한 두 팀은 한 30분 정도 쉬었다가 바로 출발한다고 하였다. 하지만 우리는 땡볕주행은 사절이었기 때문에 여기 벤치에서 한 숨 자고 출발하기로 하였다. 나는 좀 예민한 편이라 잠도 아무데서나 잘 못자는 편인데 이제는 아무 곳에서나 장소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잘 자게 되었다.
한 3시쯤 되니 햇볕이 우리 벤치 쪽으로 슬그머니 기어들어왔다. 그늘이 밀려나버렸던 것이다. 뜨거워서 도저히 잘 수가 없어 하는 수 없이 출발을 감행하게 된다. 한 네 다섯시쯤 출발했으면 좋으련만 어쩔 수 가 없었다. 우리는 해변도로를 따라 우리의 목적지인 성산을 향해 달렸다. 해변도로라고는 하지만 해변가를 따라 나 있는 길은 아니었고 괜히 오르막만 심하게 나있었다. 오후 주행인지라 우리는 괴로워하며 앞으로 나갔다. 먼저 해변도로를 따라가다가 12번 국도를 타기로 하였다. 어차피 우리가 제주도에서 자전거를 탄다는 것은 관광이 목적이 아니라 한 바퀴 돌기가 목적이었으므로 재빨리 도는 방법을 취하려고 한 것이다. 우리는 주행하면서 오르막에서조차 하이킹 족을 제쳐버리는 괴력을 보이기도 한다. 이제는 거의 허벅지의 근력이 신의 경지에 도달해가는 것 같다. 자전거 일주를 하는 내내 우리는 단 한 번의 추월도 당해본 적이 없었다. 아.. 첫 날 혼자 싸이클 타는 놈한테 추월당하기는 했는데 갸는 짐도 없었고 기자재가 우리 것 보다 월등했으니 그 녀석은 제외다. 아무튼 우리의 오르막에서의 질주는 평지에서의 질주와 맞먹을 수준에 이르렀다. 하지만 여전히 땡볕주행은 너무 괴로운 일이었다. 우리는 열심히 달리면서 아이스크림이나 하나 사먹을 가게를 찾았다. 가게가 있을 만한 동네를 찾아내기는 했는데 12번 국도를 벗어나야 했기에 좀 고민을 하다가 당장의 갈증을 해결하기 위해 구멍가게를 찾아 길을 내려간다.
근처에 있던 중학교가 수업을 마쳤던지 중삐리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이만한 곳이면 가게가 있겠구나 싶었는데 불량식품을 팔 것만 같은 초라한 가게가 하나 나왔다. 우리는 얼씨구나 하며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아이스크림 통 안에는 200원짜리 아이스크림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으니.. 서주 출신 과일맛 아이스크림들이 단돈 200원에 팔리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행복해하며 아이스크림을 세 개씩이나 먹어버리고 말았다. 폴라포도 300원. 과자와 아이스크림들을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먹어버린 우리.. 나는 나중에 배탈이 나서 고통을 겪기도 한다. 그래도 이렇게 아이스크림으로 더위를 피한 우리는 다시 힘찬 질주를 할 수 있게 된다. 아까 우리가 제쳤던 팀이 깔짝 거리면서 앞에 지나가길래 우리는 또 무서운 속도로 그 들을 제쳐버렸다. 너무 아이스크림과 음료수를 많이 먹은 탓일까.. 차가 쌩쌩 달리는 국도 옆에서도 노상방뇨를 과감하게 실행한다. 그렇게 열심히 페달을 밟다보니 어느새 이정표에 나타난 성산은 사라졌고 성산일출봉이라는 관광표지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신양 해수욕장의 간판은 없었다. 가는 길에 저녁이나 때울 겸 해서 전복죽 집을 찾았지만 전복가격 킬로당 15만원. 기겁을 하고는 아구찜이나 먹으러 들어간다.
식당 아줌니는 달콤한 말로 우리에게 아구찜을 먹도록 유도한 후 아구는 몇 조각 안들어있는 콩나물 케이크를 가져오신다. 우리는 엄청난 양을 보고 행복해하였지만 단지 콩나물로만 되어있는 케이크였던지라 크게 실망을 하고 만다. 게다가 그 무시무시한 매운 맛이란 뱃 속을 완전히 뒤집어 놓고 만다. 그래도 식당에서 맵고 든든하게 배불리 먹을 수는 있었다. 단지 든든하게 먹었다는 소리다. 저녁까지 해결하고 나니 어느새 해가 다 져버리고 하늘이 깜깜해지기 시작했다. 의도치 않았던 야간 주행이었다. 그래도 라이트는 켜지 않고 어슴푸레한 불빛 만을 따라 달렸다. 이윽고 오징어잡이 배에서 뿜어내는 강력한 조명으로 야간 주행은 역시나 분위기 있는 것 이었다. 날아다니는 풍뎅이들에 부딫히면서도 역시나 윤도현 밴드의 노래를 열창하며 달린 우리.. 신양해수욕장에 다 가서 맥주를 10병 사고 과자도 조금 샀다. 어제 모터보드 팀이 쐈으니 오늘은 우리가 좀 쏘려고 했던 것이다. 병 쩔렁쩔렁 매달고 신양 해수욕장에 도달한 순간.. 여태 가본 해수욕장 중 최악의 조건이었다. 이미 중등부 팀은 도달해서 텐트를 치고 있었고 모터보드 팀은 저녁을 먹으러 간 모양이었다. 우리는 모래가 약간 절벽 비슷하게 만들어진 곳에 텐트를 치고 몸을 좀 씻었다. 그리고 모터보드 팀과 맥주를 마시며 오늘 있었던 이야기들을 펼쳐놓았다. 톱머리 해수욕장에서 보았던 보름달은 어느새 반 쪽이 닳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밤공기가 차갑게 느껴질 즈음 각자의 텐트로 돌아가 다음 날의 주행에 대비하였다. 이윽고 무섭고 무서운 밤이 찾아오는데…
l 2002년 8월 29일 (신양 해수욕장 ~ 제주항 ~ 완도항 ~ 서울)
밤새 불던 바람은 매우 거세어져만 갔고 파도소리는 더욱 요란하게만 들렸다. 텐트 안은 후덥지근해서 잘 수가 없었는데 밖에 부는 바람은 쌀쌀하였다. 새벽 두 시경 텐트가 점점 무너져가기 시작했다. 돔 형으로 된 텐트는 거센 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심하게 휘어있었다. 그 때 시각 새벽 2시. 엄청난 바람은 텐트의 절반을 휘어버리게 만들었고 우리는 텐트가 날아가지는 않을 까 커다란 돌들을 가져와서 텐트 가장 자리에 박았다. 하지만 이 것은 처음부터 잘못된 일이었다. 우리가 텐트를 친 장소가 너무 앞 쪽이었던 지라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정면으로 받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조금만 더 자보고 그냥 새벽에 출발하기로 하였다. 하지만 바람은 거세어져만 갔고 더 이상 텐트가 견뎌낼 것 같지 않았다. 우리는 빨리 짐을 꾸렸다. 그리고 굉장히 신속하게 결론을 내렸다. 오늘 제주항에 가서 배를 타자고 말이다. 이것은 정말 신속하고도 올바른 결정이었다.
텐트와 담요, 돗자리, 폴대 등 필요없는 모든 것은 한 꺼번에 똘똘 말았다. 여기서 다 버리고 갈 작정이었다. 그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거센 바람은 텐트를 똘똘 마는 것 조차 어렵게 만들었다. 우리는 셋이서 커다란 쓰레기더미를 들고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면서 쓰레기통을 찾았다. 하지만 이 커다란 더미가 들어갈만한 쓰레기통은 없었다. 결국 우리는 어떤 정화조 같은 곳에 무단투기하기로 결정. 작은 구멍으로 커다란 텐트뭉치들을 꾸겨넣기 시작했다. 물론 걸리면 벌금을 무는 불법행위였다. 하지만 아무도 보는 이는 없었고 우리는 깔깔거리면 ‘이거 왜 안들어가’하고 소리치며 꾸역꾸역 구멍 속으로 우리의 애물단지들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챙겨갈 짐을 다 꾸린 우리. 그리고 지옥과도 같았던 신양 해수욕장을 등 뒤로 한 채 제주항을 향해 전진했다. 우리 여행의 마지막 밤은 이렇게 험난하고도 고달팠다.
우리의 첫 새벽질주였다. 12번 국도에 조차도 차는 거의 없었다. 애써서 짐을 정리하고 신양 해수욕장을 빠져나온 우리는 너무나 배가 고팠다. 그 때 시각이 한 4시 반 이었다. 항구에서는 어로활동을 하고 난 선원들을 위한 식당이 있지 않을 까 하고 성산항으로 가보기로 하였다. 성산항으로 가는 길은 공사중이라는 바리케이트가 몇 개 있었다. 거기는 주의하라고 몇 개의 깜빡이는 라이트가 있었는데 그게 어찌나 멋있게 보였던 지 우리는 이번에는 아까는 쓰레기를 무단투기하더니 이번에는 도둑질까지 하는 것이다. 이번에도 캭캭거리면서 라이트들을 챙긴다. 짐이 무겁다며 양말 한 장까지 다 버리던 우리가 쓸데없는 것이나 챙기며 오히려 짐을 더 무겁게 만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때는 너무 라이트가 멋졌고 그렇게 몰래 챙기는 게 너무 재미있었다.
근처에서 구멍가게를 찾았는데 1500원씩 이나 하는 비싼 컵라면을 먹으면서 엄청 투덜거렸다. 게다가 컵라면이 굉장히 오래된 것 같았다. 진열되어있던 쌀과자 봉지 속에는 바퀴벌레가 돌아다니고 있었고 밀키스 한 병이 2000원이었다. 하지만 할 수 없이 그런 열악한 환경속에서 아침을 때우고 재빨리 성산항을 빠져나왔다. 하지만 컵라면 탓인지 배탈이 났는지 배가 너무 아팠다. 상욱이도 좀 배가 아팠던 모양인데 난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근처에 있는 민가에 들어가서 화장실을빌렸다. 아줌마가 일을 보고 계셨는데 굉장히 놀라셨다. 하지만 곧 친절하게 화장실을 이용하라고 하셔서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그러고 다시 시원하게(?) 아침 질주를 시작하였다. 동은 이미 다 텄었고 시간이 꽤나 많이 흘렀었다. 우리는 제주항에 8시까지 도착하는 것이 불가능할 것만 같았다. 은근히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는 것 같았지만 실제로 소화해내는 거리는 얼마 안되었던 것이다. 우리는 다들 거의 포기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제주항에 도착하면 배시간이나 알아보고 사우나나 하러 가기로 하였다.
제주항까지 달리는 것은 점점 힘들어졌다. 아침이라 점점 차도 많아졌고 왠지 모르게 제주항에 빨리 가야 한다는 심리적인 압박감 때문이었을 지도 모른다. 또 결정적으로 이것이 우리 자전거 여행의 마지막 질주라고 생각하니 더욱 지쳐버렸을 지도 모른다. 우리는 명섭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클래식을 들으며 마지막까지 힘을 짜내었다. 그 와중에도 명섭이는 클래식을 크게 틀어놓고 자전거를 달리니 마치 서커스 공연 광고하고 다니는 것 같다며 킬킬거리면서 달렸다. 나도 클래식 소리만 들려오면 자꾸 웃겨서 명섭이한테 가까이 갈 수가 없었다. 제주를 10km남겨 놓으니 그 때 시간이 벌써 8시였다. 우리는 이미 배는 놓쳤다고 생각했지만 비가 후둑후둑 떨어지길래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페달을 밟았다. 이윽고 ‘제주시’ 라는 커다란 이정표가 등장했다. 그리고 ‘제주항’ 이라는 새로운 이정표가 등장했다. 이제 우리의 자전거 질주는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제주시에 들어가니 대학교에 가는 학생들도 많았고 교복을 입은 학생들도 많았다. 오히려 제주시에 도착해서는 활기가 넘쳐서 그랬을까 목적지가 가까워져서 그랬을까 페달밟기가 더 수월했다.
그 때 언덕을 돌아내려가다보니 저멀리 바다 안 쪽으로 커다란 항구가 보였다! 도착이다. 제주항에 도착했다. 내가 지금 제주항을 시야에 두고 있다는 것은 우리의 제주도 일주가 끝났다는 말이고 제주항에 자전거를 들여놓는 순간 우리의 자전거 여행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긴다는 의미다! 너무 흥분되었다. 그러면서 그동안 내 짐받이에 실려있던 무거운 짐만큼이나 부담스러웠던 온 몸의 피로가 치즈처럼 녹아버렸다. 행복에 겨웠다. 집에 간다는 사실. 우리의 자전거 여행이 멋지게 마지막을 장식한다는 사실. 모든 것이 너무 감동스러웠다. 거의 목이 메일 지경이었다. 내리막을 내려가며 소리쳤다.
“ 도착했다아아~!!!!!”
제주항에 도착한 우리는 완도행 배가 9시에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우리는 오늘 안에 서울에 간다는 것은 불가능 한 일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는데 20분 후면 완도로 출발하는 배를 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완도에서 제주도 오기 전의 허탈함과는 정반대의 짜릿함을 느꼈다. 우리는 재빨리 완도행 표를 세 장 끊고 간식거리를 조금 샀다. 그리고 개인정보를 몇 개 적고 제주도를 떠나는.. 우리의 마지막 여행지였던 제주도를 떠나는 배에 올라탔다. 이미 좋은 객실의 자리는 빼앗겨서 우리는 갑판 위에 하나 남은 담요를 깔고 자리를 잡을 수 밖에 없었다. 9시가 되자 배는 힘찬 고동소리를 울렸다. 그리고 배밑의 스크류의 진동을 느끼는 순간 배는 움직이기 시작했고 제주도를 등 뒤로 하게 되었다. 내리 쬐는 태양을 갑판 위에서 통째로 받는 다는 사실이 참기 힘들기는 했지만 이제 집에 가는 길이다. 이제부터는 자전거를 타고 어디론가가 아닌 배에 올라타고 집에 가는 중인 것이다. 그리고 태풍이 몰아치기 전의 위험한 제주도의 하늘을 보며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을 수 십 번도 더했다. 뿌연 구름에 둘러싸인 제주도는 점점 멀어져만 갔다. 그리고 시야에서 제주도가 사라졌을 무렵 우리는 갑판위에서 단 잠을 청할 수가 있었다. 이제 3시간 만 좀 더 참으면 다시 유라시아 대륙(좀 거창하군..)에 발을 올려놓을 수 있다. 한 시간 정도의 깊은 잠에 빠져든다..
하지만 제주도에서 점점 멀어지자 구름이 사라지고 얄미운 태양이 슬그머니 얼굴을 내밀다 싶더니 이제는 보란 듯이 그 뜨거운 햇살을 내리쬐기 시작했다. 더위를 견디다 못한 상욱이랑 나는 좀 시원한 밑에 객실로 내려갔다. 명섭이는 그 뜨거운 태양빛을 받으면서도 광합성을 하는 중인지 죽은 것인지 꿈쩍도 않고 단 잠을 자고 있었다. 자리가 없어서 상욱이랑 나는 괴로워하며 서있었다. 이윽고 잠에서 깬 명섭이가 자리가 빈 객실을 찾았다며 따라오라고 하였다. 여기도 역시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딴따라 잔치가 벌어진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누워있을 자리는 있었다. 마치 이 군단은 우리를 따라다니면서 노래를 하는 것 같았다. 흔들거리는 배에서도 술도 참 잘 드시고 노래도 참 잘하시며 신나게 노시는 가운데 우리는 시원하게 완도까지 갈 수 있었다. 박찬호 선발경기도 보기도 하고 갑판에 내리쬐는 태양빛을 피한다.
완도가 보였다. 우리가 힘들게 도착해서 마치 고향처럼 푹 쉴 수 있었던 완도가 보였다. 깨끗한 하늘아래 반짝이는 완도항. 이유없이 포근함을 느낄 수 있었다. 완도항에 도착해서 배는 닻을 내렸고 다들 배에서 빠져나갔을 무렵 우리도 자전거를 배에서 내렸다. 그리고 완도터미널로 가서 서울로 가는 버스표를 확인하였다. 지금 시각은 1시. 서울직행 우등버스 출발 시간은 3시 30분이었다. 시간이 정말 계획이나 한 것처럼 딱딱 맞았다. 우리는 표를 세 장 미리 끊고 시원한 식당에 들어가서 냉면과 갈비탕을 먹었다. 든든하게 점심까지 해결한 우리는 10박 11일 동안의 우리의 ‘발’ 이었던 자전거를 택배를 통해 서울로 보내기로 결정한다. 버스에 실으면 서울에 도착해서도 번거로울 것 같았기 때문이다.
택배회사에 자전거를 맡기고 걸어서 터미널까지 가는데 기분이 그렇게 이상할 수가 없었다. 자전거를 탔을 때만 해도 거침없이 이 도로를 질주했었는데 지금은 신호등 하나에 막혀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터미널에 도착한 우리. 이제 마지막으로 우리를 서울까지 데려다 줄 마차를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the end…